[책&생각] 단테의 ‘신곡’을 나침반 삼아 온전함으로 나아가다

최재봉 2022. 11.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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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서사시 <신곡> 은 단테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저승의 세 구역,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향하려던 단테가 천국으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지옥으로 내려갔다가 연옥을 거친 뒤에야 천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밟은 것은, 누구나 품고 있는 내면의 지옥('어두운 과오의 숲')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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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에서 길 잃은 단테
지옥 거쳐 연옥과 천국으로 가듯
지옥을 직시해야 구원 가능
‘신곡’을 자아 회복 지침서로
들라크루아 작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
나다운 삶을 위한 가장 지적이고 대담한 여정
마사 벡 지음, 박여진 옮김 l 더퀘스트 l 1만9800원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서사시 <신곡>은 단테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저승의 세 구역,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신곡>에서 주인공 단테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거쳐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가 먼저 가 있던 천국에 올라가 베아트리체와 재회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마사 벡이 쓴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는 <신곡>을 심리적 상처 치유와 자아 회복 지침서로 재해석한 책이다. 벡은 <신곡>을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온전함으로 가는 개인의 여정에 관한 은유로 본다.” <신곡>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 “어두운 숲”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빠져들게 되는 실수와 함정, 죄악을 상징한다. 벡은 그 구절을 차용해 ‘어두운 과오의 숲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그 증상들과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차근차근 일러준다.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향하려던 단테가 천국으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지옥으로 내려갔다가 연옥을 거친 뒤에야 천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밟은 것은, 누구나 품고 있는 내면의 지옥(‘어두운 과오의 숲’)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음을 뜻한다. “어두운 과오의 숲을 빠져나갈 유일한 출구는 바로 그 지옥의 문이다.”

삶의 목적 상실, 정신적 고통, 신체적 아픔, 관계에서의 실패, 직업에서의 실패, 나쁜 습관과 중독… 지은이가 ‘어두운 과오의 숲 증후군’의 증상들로 꼽은 것들이다. 그는 ‘이따금 내 일상의 활동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 기저에는 항상 나를 지탱해주는 만족감이 있다’ 같은 문장 28개를 제시하고 독자가 그에 ‘예’나 ‘아니오’로 답한 뒤 그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서 온전함의 정도를 파악하도록 한다. 이 문항들을 비롯해 책 곳곳에는 ‘단테와 함께 걷기’라는 꼭지가 있어서, 독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내면의 지옥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진실과 정직이다. 외부에서 주입된 기대와 요구에 응하느라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할 때,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지은이는 상담 과정에서 만난 여러 인물의 사례를 드는 한편 자신의 경험 역시 비중 있게 소개하며 논의를 이어 간다. 남 보기에 부러울 것 없을 듯한 그에게도 스스로 ‘인생 사고’라 표현한 일들이 있었다. 둘째아이 애덤의 다운증후군 진단, 여성을 억압하는 모르몬교 교리와 그 종교의 지도자였던 아버지와의 갈등,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력의 트라우마, 뒤늦게 확인한 동성애 성향과 생방송 도중의 커밍아웃 등. <신곡> 속 단테가 지옥을 통과한 뒤에야 천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이런 ‘지옥’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씩씩하게 넘어섬으로써 비로소 온전함에 이르렀노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는 “오늘날 인류에게는 어두운 과오의 숲 증후군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하며, <신곡> 천국 편에 그려진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각자가 온전함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자고 제안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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