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근원을 캐는 희곡 수업 [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2022. 11. 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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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클래스'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클래스'는 갈등 속에서 어떻게 상처를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는 2인극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 이 기사에는 연극 '클래스'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연극 '클래스'는 폭력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작품은 모든 폭력의 근저에 위계가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위계는 근본적으로 폭력을 잉태한다. 수직은 위험하다. 모든 낙하하는 것은 상처를 입힌다. 그렇다면 중력을 극복하고 수평을 이루면 폭력은 사라질까? 이 질문은 잘못됐다. 현실에서 중력을 없앨 수 있을까? 위계가 사라진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클래스'는 세 가지 유형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폭력과 상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연극 '클래스'는 희곡 창작 수업을 하는 교수 A와 학생 B가 등장하는 2인극이다. 연극에는 세 개의 폭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첫 번째는 학생 B에게 어린 시절 일어난 동성 성폭력이다. 사촌언니에게 당한 성폭력 때문에 B는 여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쓰는 희곡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로 복수의 욕망을 품고 있다. 교수 A는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B에게 둘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두 번째 폭력은 교수 A의 스승인 노교수와 B의 룸메이트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이다. 노교수는 팔을 다치는 바람에 소설을 대신 타이핑해 줄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다. 교수 A의 추천으로 B의 룸메이트가 이 일을 맡게 된다. 정황상 B의 룸메이트는 단순히 타이핑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소설 창작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나 노교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망상가로 몰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B의 룸메이트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세 번째 폭력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교수 A와 학생 B 사이에서 발생한다. 유명 작가이기도 한 교수 A는 학생 B와의 첫 만남에서 팬이라고 말하는 B에게 이유 없이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A가 B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다기보다는 교수와 학생의 위계 관계에서 허용되는 수준의 위압적 태도를 보인다. 연극 ‘클래스’는 이 세 개의 폭력을 병치시키면서 이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촌언니의 성폭력이나 노교수의 착취는 허락과 인정이 요구되는 일방적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래서 교수 A와 학생 B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불균형한 관계가 폭력을 일으키는 근본적 이유임을 암시한다.

연극 '클래스'는 갈등 속에서 어떻게 상처를 마주하고 인정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는 2인극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B는 사촌 누이에게 적절한 사과도 받지 못하고 처벌도 하지 못한 상태로 혼자 그 상처를 안고 수십 년을 살아왔다. B는 케이크를 만드는 유튜버를 다룬 희곡을 통해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를 찾으려 한다. 희곡의 진전은 더디지만 B는 룸메이트의 일을 조사하고 A의 지도를 받으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희곡을 완성한 그는 현실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나선다. 그의 복수는 마지막으로 A를 향한다.

'클래스'의 진주 작가는 두 명의 캐릭터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인물을 보편적인 유형으로 정형화할 때 보통 그의 직업을 캐릭터명으로 삼는 방식도 피하고 단지 A, B라고만 이름을 붙였다. 희곡에 A, B라고 써 두어도 관객들은 이들을 교수와 학생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지만 두 인물에게 A, B라는 이름을 부여해 적어도 희곡 안에서는 위계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 했다.

무대 세트는 희곡 창작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커다란 강의실이 전부다.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 안과 추모의 꽃다발이 있는 강의실 밖, 그리고 A와 B가 마음을 터놓고 맥주를 마시는 옥상으로 공간을 활용한다. 관객은 긴 창을 통해 둘의 희곡 강의를 엿보게 된다. 수업이 이뤄지는 강의실은 위계가 형성된 거대한 프레임처럼 보이게 한다.

2인극에서 두 배우가 펼치는 팽팽한 연기 대결도 극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A역의 이주영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논리로 B의 글과 상황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교수 역할을 빈틈없이 해낸다. B역의 정새별은 자존감이 낮고 주눅든 듯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조곤조곤 다 이야기하는 학생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희곡 창작을 두고 벌이는 토론이나 룸메이트의 죽음을 두고 보이는 상이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장면에서 한 치도 물러섬이 없는 둘의 팽팽한 논쟁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관객에게 다소 많은 정보를 주며 진행되는 작품이지만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많은 정보를 긴장감 있게 제공해 집중하도록 만든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11월 12일까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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