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원로·학자 10인이 통찰한 "복합위기, 원인과 해법은..."

권경성 2022. 11. 4. 04: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 복합위기 진단
"갈등의 시대 공급망 단절이 부른 인플레"
"美연준 오판... 뒤늦게 고강도 긴축"
"물가 대응·감세 병행 땐 정책 불신"
"금리 올리되 미시적으로 피해 살펴야"

이런 위기는 없었다. 더 세다는 말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화가 바닥나거나 금융이 마비될 정도의 파국에 이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하지만 과거 위기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난마처럼 얽혀 있지 않았다. 고통은 금융과 실물을 넘나든다. 빚진 가계는 고금리에 비명을 지르고, 외국과 거래하는 기업은 고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가난한 이는 고물가에 신음하는데, 국가 경제는 저성장 수렁으로 빠져든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목전이다.

한국일보는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등 경제 기관 수장을 지낸 전직 고위 관료와 다양한 경력과 성향의 학자 총 10명에게 현재 한국 앞에 놓인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최근 들었다.

전문가 10명의 위기 진단과 제언. 그래픽=김대훈 기자

"미중 패권 각축 속에 공급망 재편... 탈세계화"

도화선은 실물 위기였다. 올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과 대립하며 가스를 무기화했고 ‘에너지 위기’가 불거졌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조짐은 지난해 이미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중국의 고강도 봉쇄 탓에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경기 위축을 막으려 각국 정부가 왕창 푼 돈이 물건값을 밀어 올리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이 와중에 공급 쪽에 다시 탈이 나며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불은 금융으로 옮겨붙었다. 미국이 고강도 긴축에 나서면서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오판이 사태를 키웠다. 2016~2018년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지낸 안동현(58)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5월 물가상승률이 5%를 찍었을 때부터 조금씩 ‘제로(0) 금리’를 벗어났어야 하는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판단 착오를 일으켜 실기(失機)하고, 8%가 되니까 그제서야 부랴부랴 금리를 급속히 올리기 시작했다”며 “인플레는 못 잡고 달러 강세를 불러 다른 나라 통화들만 잡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러시아가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금융위원장을 맡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했던 전광우(73)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미국이 고강도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고강도 인플레 환경 탓이고, 그걸 야기한 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라며 “한국이 피해가 큰 것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위기를 한국에 더 가혹하게 만든 나라는 중국이다. 2002~2006년 한국 통화 정책을 이끈 박승(86) 전 한은 총재는 “과거 30년간 한국에서 원자재를 사들이고 저임금으로 싼 물건을 만들어 한국에 파는 식으로 한국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의 엔진 역할을 해 온 나라가 중국”이라며 “중국의 기술 산업 성장과 임금 상승으로 상황은 반전됐고, 한국은 엔진을 대체해야 하는 장기 구조적 과제를 안은 상태에서 단기 과잉 유동성과 결합한 위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부른 것도, 해결을 막는 것도 깊어지고 있는 세력 갈등이다. 대선 후보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하준경(53)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세계화 후퇴가 글로벌 공급망 단절을 초래했고 물가에 충격이 왔다”고 짚었다. 최종구(65) 전 금융위원장은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주요 20개국(G20)’의 글로벌 공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미중 갈등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같은 정치가 초래한 반목”이라고 했다. 최 전 위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2009년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이었다.

냉전 이후 미국 주도하에 연결됐던 세계가 다시 쪼개지고 있다. 세계화는 이제 끝이다. 바야흐로 다시 갈등과 빈곤의 시대다. 패권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이 첨예해지며 진영 결속도 단단해지는 분위기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선 주자 싱크탱크에서 경제 자문을 맡았던 김재영(62)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비용이 낮은 쪽으로 구축됐던 공급망이 미중 패권 각축 속에 재편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이사장은 “자유 진영 내에 배타적 공급망이 구축되고 있다”며 “탈중국화, 나아가 탈세계화 움직임”이라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 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시스

"재생에너지 늘리고 원전 활용해 에너지 자립을"

전문가들이 일단 정부에 주문한 것은 ‘일관성’이었다.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인 성태윤(52)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가치 하락을 막으려면 통상적인 금리 인상으로는 안 되는 만큼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며 “높지 않은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처럼 얘기하다 말을 바꿀 경우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도 “물가 대응과 감세 추진을 병행하면 정책 신뢰가 훼손된다”고 했다.

당장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때 정부가 살펴야 할 곳은 빚이 없으면 생계가 곤란하거나 빚으로 집 한 채 장만한 서민층이다. 안 교수는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되는 한은 통화 정책에 무책임한 부분이 있는 만큼 부작용을 해결하는 건 기재부와 금융위의 몫”이라며 “가산금리 규제 완화와 재정 보전으로 급할 때 서민이 대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최 전 위원장은 “금리와 환율 정책은 거시적으로 국가 전체를 보는 게 바람직하고, 취약차주와 부동산 가격 폭락에 대해서는 미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 교수는 “채권시장의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육책인 만큼 금리 인상 카드는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강삼모(55)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경기 침체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 공산이 큰 내년 초부터는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 조동철(61)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한은 금융통화위원)는 “물가 안정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환율이 좀 높다 싶어도 금리 인상 중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외 개방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에너지 대외 의존 문제는 차제에 풀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전 이사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자력발전소 활용 등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위기가 닥쳤을 때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회복력을 갖추려면 기업 경쟁력 강화가 첩경이라는 의견이 병존한다. 김 교수는 “대기업 뒤에서 경제를 받쳐 줄 미래 산업 벤처 기업 적극 지원으로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만 뛰어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1년 기재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76) 윤경제연구소장은 “사회적 합의를 맺고 정부뿐 아니라 기업ㆍ개인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해외 여행도 달러 유출의 요인인 만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도 모아야 한다. “일본발(發) 수입품을 엔화로 결제하면 달러 부족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강 교수 제안이다.

['3고 1저' 지뢰밭 위 한국경제] 글 싣는 순서

<1> 고금리 비명

<2> 고환율 비상

<3> 고물가 신음

<4> 저성장 수렁

<5> 복합위기 진단

세종=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