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중전, 여장 즐기는 대군...관습 비트는 퓨전 사극 또 통했다

송옥진 2022. 11. 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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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이 수업에 늦을 위기에 처한 무안대군을 궁 밖에서 잰걸음으로 찾으며 외친다.

최근 6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11.3%)를 돌파한 tvN 드라마 '슈룹'은 1회 중전의 등장부터 파격적인 퓨전 사극을 표방했다.

중전인 화령(김혜수)은 계성대군의 비밀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아들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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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슈룹'은 기품 따윈 버리고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그린다. tvN 제공

"어디 있어, 이 새끼?"

중전이 수업에 늦을 위기에 처한 무안대군을 궁 밖에서 잰걸음으로 찾으며 외친다. 최근 6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11.3%)를 돌파한 tvN 드라마 '슈룹'은 1회 중전의 등장부터 파격적인 퓨전 사극을 표방했다. 시대적 배경만 조선일 뿐, 극중 등장하는 왕인 '이호'부터 특정이 어려운 가상의 인물이다.

정통 사극이 막대한 제작비와 장기간 촬영 등을 이유로 자취를 감춘 사이 빈자리를 대신해온 퓨전 사극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죽은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세자가 된 남장 여성(KBS2 '연모'), 남자의 영혼이 깃든 중전과 철종의 이야기(tvN '철인왕후'), 조선의 첫 여성 사관(MBC '신입사관 구해령') 등의 바통을 이어받은 슈룹은 '조선판 스카이캐슬'로 불린다.


관습 뒤집고 이상적 역사 그려내...퓨전 사극의 묘미

KBS2 드라마 '연모'에는 쌍둥이 오빠의 죽음으로 남장한 채 세자로 살아가는 여성 '이휘'가 등장한다. 나무엑터스 제공

역사적 재현을 뛰어넘는 퓨전 사극은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동시대적 이슈를 다루면서 관습을 비틀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슈룹의 경우 극중 '계성대군'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계성대군은 화장을 하고 여장을 즐기는 성소수자다. 중전인 화령(김혜수)은 계성대군의 비밀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아들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언젠간 말이다. 남과 다른 걸 품고 사는 사람도 숨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거야." 숱한 차별이 공고한 2022년에도 유효한 메시지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국내 사극은 실제 역사를 토대로 재현(1단계)하는 데서 '추노', '대장금'처럼 정사에서 비켜난 야사나 번외편 같은 사극(2단계)이 인기를 끌다가 10년 전부터는 이상적인 역사를 아예 새로 쓰는 방식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극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시청자에게 내가 그 변화에 참여하는 느낌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는 허구라 하더라도 조선시대의 엄격한 적서차별과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비록 남장을 한 채지만) 여성이 세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관습을 뒤엎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반복되는 고증 논란...역사 왜곡과 역사적 상상력은 구분해야

tvN 드라마 '슈룹'에선 세자를 적자가 아닌 실력으로 선발하는 택현이 등장한다. tvN 제공

그러나 역사적 상상력이 과감해질수록, 고증 문제가 따라붙는 건 딜레마다. 슈룹을 예로 들면, 원손도 있고 중전의 적자가 4명이나 있는데 후궁들이 낳은 서자들을 포함해 (왕을 실력으로 선발하는) 택현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상상력은 역사 왜곡과는 구분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민정 교수는 "'조선시대에 중전이 뛰는 게 가능하냐'와 같은 지적은 옳고 그름이 아닌 역사적 상상력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쓰던 '태화전' 명칭을 사용하거나 '물귀원주(物歸原主·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다)'의 자막을 중국의 간체자(간화자)인 '物归原主'로 처리한 오류는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택현의 가능성 여부는 실제 역사와 비교해 옳고 그름을 따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tvN 드라마 '슈룹'은 '물귀원주(物歸原主·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다)'의 자막을 처음에 중국의 간체자(간화자)로 표기했다가 논란이 일자 바로 수정했다. tvN 제공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도 "슈룹의 경우 조선시대의 질서를 상수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성소수자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다룰 공간이 생기는 것"이라며 "'고증이 잘못됐어'라고 말할 때는 한편으론 우리가 고착화된 사고에 균열을 내는 것을 못 받아들이는 심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사극에서 착취당하는 노비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고증과 당시 시대질서에는 맞지만 그것을 왜 지금 그리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퓨전 사극에서 정말 중요한 건 사극이라는 틀 안에서 고정관념을 어떻게 흔들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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