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바레인 방문 교황, 사형제 폐지·노동 환경 개선 촉구(종합2보)
"교황, 기내에서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무릎 통증 심해"
(테헤란·바티칸=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박수현 통신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3일(현지시간) 걸프 국가 바레인에 도착해 3박 4일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인구의 약 70%가 무슬림인 바레인에 현직 교황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오후 사키르 공항에 도착해 국왕이 주최하는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오늘날 많은 노동 현장에서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고 이는 심각한 사회 불안과 불러온다며 "어떤 곳에서든 노동은 안전해야 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이 발언은 이웃 국가인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되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왔다. 카타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논란이 돼 왔다.
교황은 "나는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처벌받는 사람을 포함해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사형제를 언급했다.
바레인은 한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으나 2017년부터 재개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형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2018년 공식 교리로 천명했으며 교황은 이때부터 전 세계에 사형 폐지를 촉구해 왔다.
이번 방문은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래 39번째 국외여행으로,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의 초청에 교황이 응해 성사됐다.
외신들은 교황의 이번 바레인 방문은 무슬림과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교황청 관계자는 "교황은 다른 현실을 가진 이슬람 세계와 통하는 새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이라크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회담하기도 했다.
교황은 4일 바레인 국왕이 주관하는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 인류 공존을 위한 동서양' 폐막식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이번 포럼에는 이집트 최고 종교기관 알아즈하르의 대(大)이맘이며 수니파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아부다비에 본부가 있는 무슬림장로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200명이 넘는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5일에는 바레인 아왈리에 세워진 '아라비아의 성모 대성당'에서 초교파적 기도를 이끌 계획이다.
이 성당은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으로 작년 12월에 문을 열었으며 한 번에 2천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바레인에 거주하는 가톨릭 신자 수는 약 8만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에는 인도나 필리핀 등 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요일인 6일에는 마나마에서 주일 삼종기도에서 주교들과 신자들과 만나 기도하는 것을 끝으로 바레인 일정을 마무리하고 로마로 귀국한다.
교황은 무릎 질환 탓에 출장 기간 대부분에 휠체어를 타고 다닐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바레인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무릎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거동을 하지 못했다.
올해로 만 85세인 교황은 올해 초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진 이래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해 사목 활동을 이어갔다.
그래도 기내에서만큼은 통로를 걸어 다니며 동행한 취재진과 항상 인사를 나누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릎 상태가 악화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교황은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비행기 안을 돌아다닐 수가 없다"며 "그래서 내가 앉은 곳으로 여러분(취재진)이 와달라"고 말했다.
통신은 교황이 고통에도 불구하고 취재진을 맞이할 때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번 바레인 방문에 대해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레인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마찬가지로 아랍권에서는 종교 문제에 관용적인 편인 나라로 알려져 있으나, 2011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이래 야당 인사들의 활동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종교 탄압이 동원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왕 등 바레인 왕가는 수니파지만, 바레인의 무슬림 인구 중 60∼70%는 시아파다.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과 야당 인사 중에는 시아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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