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쌀의 시장 격리는 시대착오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2022. 11. 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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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의결한 양곡관리법
민생·약자 편이라는 이미지 연출하는 정치적 ‘묘수’
실제론 농민 피해 키우고 농업혁신 해치는 국가적 ‘패착’
당장 표 계산에 눈 멀었나
소병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이 2022년 10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가결 시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싸고 정치판이 진흙탕으로 변한 와중에 민주당이 ‘민생 법안’ 하나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올 정기국회 최우선 입법 과제로 자체 선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달 국회 유관 상임위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해당 법안을 단독 의결했다.

골자는 이렇다. 쌀 생산량이 예상의 3% 이상이 되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초과 생산량 전부를 정부가 무조건 사는 것이다. 또한 현행법이 추수철이 지나고 농민이 제시한 최저가 쌀을 구매토록 하는 데 비해, 개정안은 추수기에 시가(市價)로 쌀을 매입하게끔 변경했다. 현재 매년 20만t 이상의 쌀이 남아도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연평균 1조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될 전망이다. 미곡 보관비가 매입비를 능가하여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은 차고 넘친다. 정부가 ‘묻지 마’ 구매를 약속한 터라 우선은 쌀의 과잉 생산이 가속화될 우려다. 그게 농민들의 ‘합리적’ 반응일 것이다. 농민들이 쌀 품질 고급화에 노력하기보다 생산량이 많은 작물을 선호할 개연성도 커진다. 정부의 쌀 자동 수매를 노려 쌀 이외 품종에 대한 재배 기피 현상도 예상된다. 이는 쌀의 잉여 생산 증가로 인한 가격 추가 하락으로 이어져 농민들의 피해가 가중될 수도 있다. 그 보완책으로 밀·콩·배추 등 다른 기초 농산물에 대한 국가수매제를 도입한다면 농업의 시장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 농업 관련 예산 전용 탓에 스마트팜 같은 각종 농업 선진화 정책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묘수(妙手)’로 읽힌다. 너무나 ‘민주당답고’ 더없이 ‘이재명다운’ 행보다. 우선 그래도 민생은 챙긴다는 인상을 국민 앞에 연출한다. 식량주권을 거론해 정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효과도 있다. 농민의 손을 들어줘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 편이라는 점을 과시할 수도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 강행을 약속한 곳이 곡창(穀倉) 호남이었기에, 민주당의 정치적 안방을 관리하는 의미 또한 적지 않다. 게다가 설령 법안이 대통령 거부권에 막힌다고 해도 잃을 게 별로 없다. 정작 법률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수많은 폐해의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농본 국가의 추억을 재소환한 측면도 엿보인다. 인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국가 형태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곡물이었다. 다양한 먹거리 가운데 곡물만이 거대한 인구 집단에 대한 풍부하고도 안정적인 영양 공급이 가능했고, 수확 시기의 규칙성이나 계량 및 감정(鑑定)의 합리성, 저장 및 운반의 편리성과 관련하여 곡물만큼 효율적인 조세원도 없었다. 말하자면 국가와 곡물의 공생이다. 밀, 보리, 쌀, 옥수수 등을 ‘정치적 작물’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정치학자 스콧). 쌀이 특히 그렇다. 쌀에서 필수 영양분을 섭취하는 비율은 다른 곡물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며, 경작 과정에 워낙 많은 품이 드는 데다가 낟알 형태대로 밥을 짓기 때문에 정서적 애착도 유난히 강한 편이다(사회학자 브로델). 그래서 일본인에게 쌀이 혼이고 신이라면(인류학자 오누키 에미코), 한국인에게 쌀은 어머니나 고향 같은 느낌으로 존재해 왔다.

그 잔재일까?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는 21세기까지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정치적으로 먹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쌀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고 논리적 접근이 어려워지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쌀 소비 급감 추이가 말해주듯 점점 더 많은 한국인이 더 이상 밥심으로 살지 않는다. 쌀밥을 많이 먹을수록 애국심이 커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쌀의 시장 격리가 농가 소득을 높이고 식량 안보를 지키는 최선의 방책은 아니다. 정부 지원 중심의 농정(農政)은 1980~90년대 유럽에서 대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농업의 ‘보호’가 아니라 ‘혁신’이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민주당 사람들만 당장 표 계산에 눈이 어두워 아는 듯 모르는 듯할 뿐이다. 세상을 넓게 보지 않으면 국민 정당 자격이 없다. 세상을 멀리 보지 못하면 정치 지도자 감이 아니다. 도대체 정치적 묘수와 국가적 패착을 구별하지 못하는 집단이 정국을 밥 먹듯이 사유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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