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영끌’ 예금

강경희 논설위원 2022. 11. 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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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저축은행에서 연 6.5% 금리를 주는 정기 예금 특판 상품을 내놓자 문 열기 전부터 북새통을 이루는 ‘오픈 런’이 벌어졌다. 영업 시작과 동시에 입장했는데 10시간 기다려 특판 예금에 가입한 사람도 있었다. ‘샤테크(샤넬+재테크)’하려고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 밤새 기다리는 ‘오픈 런’이 있었는데 금리 상승기가 되니 ‘예테크(예금+재테크)’하려고 금융기관 앞에서 오픈 런이 벌어진다.

▶젊은 네티즌이 ‘영끌 예금’으로 예대 마진을 챙긴 사연을 적어 놨다. 자신이 가진 연 금리 1.8%짜리 주택청약저축을 담보로 연 금리 2.79%에 은행 대출을 받아서 연 금리 4.55%의 정기 예금에 돈을 넣었다고 자랑했다. 자신이 가입한 예금을 담보로 대출받으면 대출 금리가 예금 금리의 1%포인트 정도만 높기 때문이다. 원래 예금담보 대출은 자금이 급할 때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예금을 해지할 필요없이 돈을 융통하는 방법인데 금리 상승기에 ‘영끌 예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중은행의 예금담보 대출이 평소보다 2배 늘었다.

▶”금리가 쪼까 떨어져 가꼬 뭐, 한 15%밖에 안 하지만…. 아~ 그래도 따박따박 이자 나오고 은행만 한 곳이 없제!”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한일은행 행원으로 등장한 주인공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대사다. 월급 받아 아껴 쓰고 남은 돈을 은행에 저금하면 돈이 절로 불어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가 한 자릿수 금리 시대가 된 것은 IMF 외환 위기 이후다. 그때만 해도 5% 금리는 저금리로 느껴졌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0%에 가까운 초저금리 시대를 10여 년 겪고 나니 전 국민이 연 5~6% 은행 예금 금리가 얼마나 안전한 ‘고금리’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시중은행의 정기 예금이 한 달 새 50조원 가까이 늘었다. 사실 상당한 자산가가 아니면 금리 1~2%포인트 상승으로 챙길 수 있는 이자 수입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은퇴 세대도, 젊은 세대도 적은 목돈을 들고도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예금 상품에 가입하려고 오픈 런 수고까지 한다. ‘금리 노마드(유목민)’의 등장이다. 매일 바뀌는 예·적금 금리를 실시간 비교한 금리 비교표를 두고 ‘뱅보드 차트(뱅크+빌보드차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미친 집값’에 놀라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사는 ‘영끌 투자’가 성행했는데, 이제는 있는 돈을 박박 긁어 은행에 ‘영끌 예금’하겠다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다. 금리가 한순간에 바꿔 놓은 풍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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