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반복되는 참사, 무력감을 이기는 법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기가 괴로웠다. 필자는 경기도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희생자 중엔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도 있었다. 동창 몇몇과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도 자식 잃은 부모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던 창백한 얼굴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기자가 되고 세월호 2주기 때 취재차 팽목항을 찾았다. 자식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는 부모들은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유족의 말이 먹먹하게 와 닿았다. “그땐 해경이 잘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해경들 멱살 잡고 때리고 난리를 쳤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도 무슨 죄가 있었겠나 싶어요.” 가라앉은 분노만큼 더 깊어진 슬픔이 느껴졌다.
1년 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제발 빨리 와 달라. 숨을 쉴 수가 없다”며 119에 신고한 희생자의 마지막 음성이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소방 당국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고, 비상구가 막혀 있었고, 불법 주차 차량으로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는 등 안전 불감증이 만연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또다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150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압사 사고에서도 경찰의 초기 대응 미흡, 과밀 사회에 무뎌진 안전 불감증 등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반복되는 대형 참사에 많은 이가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책임질 대상부터 먼저 찾는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분노가 앞서다 보면 눈에 쉽게 띄는 곳에만 칼을 휘두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해체와 수학여행 전면 중지가 적확한 대책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경찰의 부실 대응에 관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신고에도 왜 출동할 수 없었는지, 왜 인력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누구보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현장의 젊은 경찰들을 위축시키고,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들의 입마저 틀어막을까 우려스럽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책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에서 한국 사회에서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재난의 원인을 일부의 욕심이나 무지 같은 개인적 문제로 돌리기 때문이다. 사회 제도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어렵다 보니 일부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왜 제때 출동하지 않았느냐’고 개인을 비난하는 건 쉽다. 지도부 몇 명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도 뻔한 길이다. 하지만 쉽고 뻔한 방식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순 없다. 섣부른 비난보다 깊은 애도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누구 책임이냐’ 따지는 분노보다는 ‘어떻게든 재발을 막겠다’는 각오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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