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0] 깊은 슬픔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2. 1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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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해서 두려워하지도 못한 일, 상상도 못 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충격으로 시야는 흐리고 마음은 잿빛이다. 대책을 세우고 논평을 내고 문제를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한다. 애도는 이 모든 소음을 빨아들이는 깊은 슬픔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형순, 드로잉 004, 2022

진실은 쉽사리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분절된 시간과 공간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가며 복기하고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며 뼈아픈 시간을 인내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진실의 얼굴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온갖 메시지가 난무하는 미디어에 넘실대는 욕망을 뒤집어쓴 얼굴이 떠올라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형순 작가는 ‘윤슬’ 연작에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어 붙이듯이 검은 사각형을 콜라주하고 그 사이에 빛을 심어 넣었다. 전화기와 모니터 위를 떠다니는 글씨와 숫자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작가는 어린 시절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윤슬을 찾아다녔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은 사진 속에서 별처럼 빛난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간 곧 흐트러지는 빛무리를 바라보는 동안, 작가는 검은 하늘의 은하수처럼 윤슬을 잡아 두려면 빛과 바람과 물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느 하나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아서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만 평화롭게 별이 뜨는 것이다. 찬찬히 바라보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함으로써 작가는 물 위의 빛을 어두운 하늘 위의 별로 만들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 왔다. 목적과 방법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메시지를 만들고 공유하기 용이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나눌지 스스로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입법과 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도 이 비극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지금은 울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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