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2>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
- 아테네-스파르타 27년간 전쟁
- 8권 책에 21년째 상황까지 담아
- 아테네 성장 두려워한 스파르타
- 전쟁 발생한 근본 이유라 전해
- 잔인함·이기심 인간 민낯 보여
- 이익을 얻고자 일으킨 전쟁이
- 모두를 망하게 한단 진리 담아
- 한반도 비극 재발 안된단 교훈
고대 그리스에서 동족끼리 30여 년 살육전을 벌였다. 그런 비극이 왜 일어났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 읽어보면 낯설지 않다. 양대 왜란과 이순신 장군이 눈앞에 나타난다. 또 다른 반도가 하나 떠오른다. 한반도,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다툼에서 눈을 떼어선 안 되는 곳이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맞선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가보자. 북쪽이 그리스 본토. 2700여 년 전 이 땅과 에게해에선 도시국가 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전시(戰時)엔 군중심리가 여론을 이끈다. 민회(民會)는 곧 민심. 도시 지도자들은 민중 앞에 서서 목소릴 높였다. 명연설이 나왔다. 디지털 시대에 그 글을 읽어보면 맥박이 세진다. 실제로 민회에서 듣는다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숨진 아들을 품에 안은 부모들, 다가오는 적 함대를 바라보며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궁수들. 그들이 듣는 지도자 연설은 불화살 같다. 쉭 하고 불화살이 가슴을 맞히면 불길이 인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 불길을 현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고전(古典)이 아니라 ‘신전(新典)’이다. 현대에도 전쟁은 일어나고, 이 고전은 소환된다.
■ 페리클레스
당시 아테네는 태풍 앞 촛불이었다. 지도자 깜냥이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드러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하 펠전) 초반에 등장하는 아테네 장군이자 정치인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 그는 내우외환에 흔들리는 민심을 쿡 찔러 정신 차리게 한 걸어 다니는 송곳이었다. 민중과 같이 울었다. 하지만 스파르타 동맹군이 쳐들어와 노략질하는 와중에 악성 역병까지 돌아 시민이 마구 죽어 나갔다. 그때까지 페리클레스를 고분고분 따랐던 민중, 그를 탓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페리클레스는 민심을 다독였다. 소집한 민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서다.
“나는 여러분이 내게 이렇게 분통을 터뜨릴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연 페리클레스. 자기에게 화내거나, 현재 고난에 무릎을 꿇는 건 옳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이유를 설명한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뤄 설득력이 갑이다. 민중이 원하는 지도자 자질.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떠올리십시오.” 생사가 걸린 전쟁통에 이 말을 누가 반박하랴. 그는 아테네가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고 자신감을 잃는 건 어리석다며 듣도 보도 못한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 우리가 소유한 땅은 얼마나 넓다고 생각하십니까?”
아테네와 그 동맹국이 가진 육지라고 여기는 민중을 향해 페리클레스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러분은 바다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막강한 해군력으로 바다를 장악했지요.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스파르타 연맹보다 해군력이 우세한 아테네 동맹국이 이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펠전 전몰 병사에게 추도사를 바친다(2권 35~46장). 이 연설은 동서고금 지도자에게 교과서. 허공에 날려버릴 슬픔과 분노를 애국심으로 격상하는 언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품격을 보여준다. 절망하는 대중에게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 길로 함께 가자고 호소한다. “아테네 전체가 그리스의 학교(tes Hellados paideusis)입니다.” 우리도 통일을 이뤄 이런 연설을 듣는 날이 올까. “한반도 전체가 이 지구의 학교입니다.” 가슴이 참으로 뛰지 않을까.
■ 투키디데스
아테네-스파르타 동맹은 27년간 펠전(기원전 431~404년)을 벌였다. 전체 8권에 21년째까지 담았고 그 뒤론 뚝 끊겼다.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후대 역사가들이 뒷장을 이었다. 미완성 역사서지만, 저자는 이 전쟁을 끝까지 지켜봤다. 1~8권 중간중간 ‘아테네 패망’이란 결말을 내비친다. 원 서명(書名)은 모른다. 패군지장이 쓴 역사서가 명저가 됐으니 이채롭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데 말이다.
투키디데스는 한때 아테네 장군이었는데 암피폴리스를 못 지켰다. 그 책임을 지고 내쫓겨 20여 년 떠돌았다. 서너 발짝 떨어져 조국과 전쟁 역사를 쓸쓸히 응시했던 시간. 무익하지 않았다. 엄정하게 역사를 쓰는 데 도움을 줬기 때문. 글 쓸 때 모국 아테네 쪽으로 좀 기울었을 뿐이다.
기원전 431년 그리스를 지배한 양대 도시국가인 아테네(이오네스족, 헬라스)와 스파르타(도리에이스족, 펠로폰네소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다. 우세한 해군력을 내세워 에게해 여러 국가 위에 등극하려는 아테네. 스파르타는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지배한 맹주. 이들은 6년 10개월여 불안정한 휴전기를 포함해 27년간 패권을 다퉜다.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80, 479년)이 끝난 지 50여 년 만이다. 두 도시국가가 에우보이아 전쟁을 끝내고 ‘30년 휴전 조약’을 맺은 지 14년째. 저자는 전쟁이 터진 근본 이유를 “스파르타 동맹이 날로 강성해지는 아테네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아테네가 자신들을 정복하면 남자는 모욕당하고 처자·자녀는 노예가 되니까. 두려움이 피비린내를 불렀다.
이 책은 전쟁이 일상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선, 외침은 내란을 부른다. 모두 적군을 막아야 할 상황인데 국내 정파들이 혈전을 벌인다. 전시를 틈타 권력을 잡으려 하기 때문. 적과 내통하는 게 다반사다. 골육상쟁도 마다하지 않으니 참극이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이, 아니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하고, 신전에서 끌려 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3권) 케르키라에서 벌어진 참상. 이 나라 민중파는 아테네 세력, 소수파는 스파르타군을 불러들였다.
■ 한반도
인간이 전쟁하면 아귀로 변한다. 인간 마음이 전쟁 환경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한다고 썼다. 저자는 그런 현상이 불변이라고 결론지었다. 2022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만행을 보면 맞아떨어지는 통찰이다. 인간은 전쟁을 학습해 갈수록 잔인해지고, 보복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기심과 이익 추구. 인간 본성과 행동 동기는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 2대 요인이다. 여기에 눈을 갖다 대면 전쟁 민낯이 보인다.
결사 항전이냐, 백기 투항이냐. 약자 는 두 카드를 받는다. 5권 84~116장은 아테네가 스파르타 이주민인 멜로스 사람을 깡그리 죽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 의원들을 으른다.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겁니다. 현실에서는 강자는 자기 뜻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지요?” 멜로스 의원들은 700년 넘게 중립국으로 살아온 자유를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겠다며 항복하지 않았다. 아테네군은 멜로스를 포위해 옥좼고, 멜로스 내부엔 배신자까지 생겨 일시에 무너졌다.
아테네는 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했지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멜로스 성인 남자는 잡히는 대로 죽임을 당했고, 처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렸다. 전쟁 발발을 최대한 억지해야 하지만, 일단 터지면 이겨야 한다며 땅을 쳤다.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세대가 몸으로 얻은 교훈. 전후 세대는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았다. 선조가 페르시아에서 지켜낸 땅을 패전한 후손이 잃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불구경하듯 읽을 수 없다. 전쟁이 터질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한반도에서 들여다보면 더더욱 그렇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27년간 싸우는 동안 그리스 전체가 쇠잔하고 피폐해졌다. 국민 고통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동족상잔이 없었다면 그리스 역사, 나아가 세계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고전은 단순하면서도 불변인 진리를 전한다. 이익을 얻고자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모두 망한다. 그 비운이 남한과 북한을 비켜 가란 법은 없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