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9] 안전한 사회로 가는 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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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테(岩手)현의 작은 어촌 후다이무라(普代村)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인명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포구 바깥에 정박해 있던 선박은 90% 이상이 파괴되었지만, 포구 안쪽의 주거지는 동북지역 최고 높이의 방파제와 수문 덕분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구 25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 이례적인 수준의 방재 인프라를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1947년부터 40년 동안 촌장으로 봉직한 와무라 고토쿠(和村幸得)의 집념이 있었다.
후다이무라에는 1896년과 1933년에 발생한 거대 쓰나미로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있었다. 청년 시절 쓰나미의 무서움을 체험한 와무라는 수해로부터 안전한 마을을 만드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고, 그의 집념은 15.5m 높이의 방파제(1967년)와 수문(1984년)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 그의 구상은 입안 당시 주민과 상급 관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14m가 경제성을 고려한 적정 높이인데, 그 이상이 되면 막대한 비용과 불편이 초래된다는 이유였다. 와무라는 1896년 쓰나미의 (추정) 수위가 15m이므로 그 이상의 수위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 번 일어난 일이 세 번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고, 수십 년간 설득을 거듭한 끝에 반대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경제 수준이 향상될수록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전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과 불편을 감내해야 얻을 수 있는 가치재이다. 9·11 사태 이후 항공 안전 규제 강화로 비행기 타는 일이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음은 모두가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단편적인 책임을 물으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비용·효과를 고려한 사회적 공감대와 일상에서의 실천이 생활화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부단한 개선 노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보다 안전한 사회를 향한 좁은 길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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