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어텐션] 이태원 프리덤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2022. 11.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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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바클라바를 좋아한다. 바클라바는 튀르키예(터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디저트다. 밀가루 반죽을 바싹하게 구운 페이스트리의 일종이다. 유럽에도 페이스트리는 있다. 크루아상이 대표적이다. 바클라바는 페이스트리에 견과류를 넣어 구운 뒤 시럽을 부어서 만든다.

바클라바의 특징은 달다는 것이다. 그냥 단 정도가 아니다. 이가 녹고 혀가 삭을 만큼 달다. 그래서 튀르키예 사람들은 바클라바를 설탕 넣지 않은 커피와 곁들여 먹는다. 나는 바클라바를 런던 히스로 공항의 음식점에서 처음 먹었다. 뇌를 떨었다. 지나치게 단 걸 먹으면 머리가 띵해지는 슈거러시(sugar rush)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천상의 디저트였다.

며칠 전 나는 갑자기 바클라바가 먹고 싶어졌다. 사람은 원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단 음식이 당기게 마련이다. 혹시나 싶어 음식 배달 앱을 열어 바클라바를 검색했다. 있었다. 딱 한 식당이 바클라바를 팔고 있었다. 쾌재를 부르며 주문 버튼을 눌렀다. 식당 위치가 지도에 떴다. 이태원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 맞은편이었다. 내 손가락이 거의 본능적으로 취소 버튼을 눌렀다. 식당이 주문을 접수하면 취소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주문은 취소됐다.

나는 복잡한 심경이 됐다. 왜 주문 취소 버튼을 그토록 빨리 누른 것일까. 나는 일종의 정서적 쇼크 상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 거리 근처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태원이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이태원이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다. 이태원은 죄가 없다. 이태원도 살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장년층 독자에게 이태원은 외래문화로 가득한 향락의 소굴일 것이다. 이태원은 그런 동네가 아니다. 세상 모든 문화가 가장 빠르게 들어오는 동네다. 이태원이 없었다면 K팝의 출발도 없었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선구적 음악가는 모두 이태원에서 음악과 춤을 배웠다. 독창적 갤러리, 서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트 서점, 본토 맛을 내는 바클라바 가게 모두 이태원에 있다.

한국 문화는 외래문화를 들여와 제 것으로 만든 뒤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태원이라는 동네는 그 성장의 중심지다. 핼러윈을 한국인의 축제로 만든 곳도 이태원이다. 사람들은 서울 다른 동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 핼러윈에 간다. 어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어도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유일한 동네의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간다. 그게 외래의 향락이라면 일본식 카드놀이를 서양식 종교 명절 밤에 모여서 하는 행위보다는 덜 외래적이고 덜 향락적일 것이다.

나는 결국 바클라바를 주문했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현지의 맛만큼 기겁하게 달지는 않았다. 이태원은 핼러윈처럼 바클라바도 한국식으로 변형했다. 그러니 그것은 튀르키예의 맛인 동시에 한국의 맛이다. 이태원의 맛이다. 이태원 클라쓰다. 이태원 프리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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