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사람들은 왜 와인을 두려워할까
최근에 나는 와인 강연을 하고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탈리아로 요리유학을 갔다가 와인에 눈을 뜬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기 전까지 레드 와인을 잘 마시지 않았다. 최소한의 고기만을 먹으려는 식습관도 이유였지만 괜찮은 레드 와인이 한국에서는 워낙 고가인 탓도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현지의 레드는 너무 맛있고 쌌다. 그래서 레드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원래 나는 가성비 좋고 내가 즐기는 해산물 음식과도 궁합이 좋은 화이트를 주로 마셨다. 그게 거의 20년이 됐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내 와인 강연의 무게중심은 이탈리아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다.
와인 강연을 들었던 수강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먼저 이탈리아와 화이트 와인이 그렇게 다채로운지 몰랐다는 긍정적 반응이다. 한 수강생은 “많은 와인 강좌를 들었는데 대부분 프랑스 레드였지 이탈리아와 화이트 와인 강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그는 ‘프랑스 와인이 지겹다’는 놀라운 말도 했다). 물론 정반대 유형도 있다. 왜 프랑스 레드 와인에 대해 강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두 유형은 같은 출발점에 있다. ‘와인=프랑스’라는 선입관이다. 한국인의 와인 울렁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유럽에 와인이 퍼진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석회암 토양인 유럽에서 물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물보다는 안전한 와인을 마셨다. 다른 이유는 와인이 기독교적 신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성스러운 와인은 유럽에서는 물을 타서 마시는 음료였다. 지금처럼 진한 와인이 등장한 것은 17~18세기 노예무역으로 유럽에서 자본축적이 일어나면서 고급와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부터였고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이어 프랑스 왕실 요리가 서양 요리의 주류로 떠오르며 프랑스 음식과 와인이 유명해졌다. 눅진한 프랑스 오트퀴진의 전통은 왕이나 귀족의 차별을 위한 음식이었다. 이후 일본이 서구 문화를 추앙하듯 수용하면서 이웃인 우리에게 ‘와인=프랑스’라는 선입견이 전파됐다.
하지만 서양 요리에는 진한 버터와 크림을 얹은 고기 요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까지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채소수프와 빵 그리고 염장한 고기를 주로 먹었다. 이런 음식에는 가벼운 와인이 어울린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와인을 소금과 후추 같은 양념쯤으로 여긴다.
와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파가 지체되는 사이 와인은 과시와 구분을 위한 도구로 우리에게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와인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와인으로 차별받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 그것도 고가의 레드만을 알려고 한다. 그렇지만 고가의 와인은 식탁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이런 와인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와인 고유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기독교에서는 와인을 ‘예수의 피’라고 말해 왔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수십만원을 우습게 넘는 고가의 와인과 따뜻한 가족의 식탁 위에 올라온 소박한 와인 가운데 어떤 와인을 흡족하게 여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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