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이별의 길? 그래도 오늘 그 길엔, 연인들이 ‘광화문 연가’를 읊조리며 다정히 걷는다
“연인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던 남자에게 묻는다. 덕수궁 돌담길은 ‘걷다’보다는 ‘거닐다’가 어울리는 한가로운 산책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조선의 왕이 살았던 덕수궁의 돌담길은 고종에게는 한가로운 길이 아니었다.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살해된 후, 고종이 거처를 경복궁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덕수궁’으로 현판이 바뀌었다. 덕수궁 돌담은 러시아공사관의 담과 맞닿아 있었는데 여차하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덕수궁 돌담부터 러시아공사관까지 거리는 120m밖에 되지 않지만 고종이 자기 나라와 이별했던 멀고도 험한 망국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고종의 길’이라 부른다.
고종 사망 후 일제는 1921년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했다. 데이트 코스가 된 덕수궁 근처에는 러시아공사관뿐만 아니라 이혼수속을 담당하는 경성재판소 가정법원이 있었다. 가정법원은 광복 후에도 계속 그 업무를 수행하다가 1995년에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우영우 변호사가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던 연인들은 헤어지는 이유’를 “과거 덕수궁 돌담길 북쪽에는 대법원과 함께 서울 가정법원이 있었습니다. 이혼을 하려면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별의 전설’ 괴담이 밝혀졌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노래가사처럼 반세기가 지나도 덕수궁 돌담길 사진의 연인들은 꾸준히 걷고 있다. ‘이별의 메카’를 무색하게 만든다. 늦가을, 덕수궁 돌담길의 나뭇잎들은 스스로 줄기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진다. 이별을 고한다. 이래야 나무가 겨울에 살고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이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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