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문화는 본래 국적 없어 '핼러윈은 무죄'
'이태원 참사'를 두고 누군가는 왜 하필 거기서 국적도 없는 문화를 즐겼느냐고 말한다. 강조하건대 문화는 본래 국적이 없다. 문화에 국적을 부여한 것은 근대 국민국가다. 국민, 영토, 주권이 있으면 국가를 만들 수 있지만 더 그럴듯한 국가를 위해서는 '문화'가 필요했다. 역사적으로 공유해온 언어, 관습, 생활양식 등을 이념으로 묶어내 '민족'과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 국가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그러므로 근대 국민국가는 곧 근대 문화국가다. 국가가 정책이라는 장치로 문화를 구속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문화, 미국문화라는 말을 쓰지만 문화는 물처럼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속성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일을 나무라고자 한다면 서양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BTS)의 음악과 '오징어게임'을 즐기는 일도 비판해야 한다. "저들은 왜 국적 없는 한국문화를 즐긴단 말인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기준을 바로세워야 한다. 크리스마스가 세계인의 축제가 된 것처럼 핼러윈도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이가 즐기는 문화가 됐다.
핼러윈 축제는 2000년대 초 영어유치원이 유행하면서 우리에게 흘러왔다. 서너 살 되는 아이들이 영어와 미국문화를 배우면서 핼러윈을 경험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축제였을 것이다. 이들이 자라 20대 청년이 됐고 '각인효과'로 간직하고 있던 핼러윈에 대한 향수를 발산하고자 했다.
핼러윈 축제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생애주기를 보면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약 20년 동안은 3~4년에 한 번 자기 정체성을 바꿔야만 하는 시기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에 가고, 해외 유학생이 되고, 취직해야 하고, 결혼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그럴듯한 '나'가 돼 다음 단계에 잘 진입해야 한다는 압박, 정체성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는 억압에 노출된다. 분장과 변장, 코스프레는 '나'를 그럴듯하게 바꿔볼 수 있는 실험이다. 핼러윈 축제는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해방감으로 정체성 전환의 쾌감을 선물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다 할 축제가 없다. 설과 추석을 민족의 명절이라고 하지만 이는 농업사회에 기반을 둔 축제다. 설은 농사의 시작을, 추석은 농사의 끝을 의미한다. 공업사회에서도 설과 추석이 면면히 이어진 까닭은 그 안에 담긴 '가족'이라는 가치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가족'의 가치는 해체되고 있다. 1년에 두어 번 만나는 이들이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명절에 모여 진학, 군대, 취직, 결혼, 출산 등을 무기로 집요하게 청년의 삶을 물고 늘어진다. 일상의 억압을 벗겨줘야 할 축제가 도리어 일상의 문제를 꽁꽁 묶어버리자 청년들은 설과 추석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축제가 없는 청년들에게 핼러윈은 그나마 탈출 가능한 출구였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핼러윈을 수용하고 향유했다. 그러므로 핼러윈도, 축제를 즐긴 청년들도 죄가 없다. 책임은 참사가 일어날 때까지 손 놓고 있던 경찰과 정부에 있다. 참사 이후 국무총리는 외신기자들에게 버젓이 농담을 던지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용산구청장은 "할 일을 다했다"고 발뺌하고, 대통령실은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서 한계가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참사가 벌어지기 4시간 전부터 수십 번에 걸쳐 구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왜 살려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했는가. 그 책임을 반드시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직후 구조와 수습을 지시했다. 국가가 구조하고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일이라면 국가가 마땅히 예방해야 할 책임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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