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혹 떼고 미소 찾은 마다가스카르 청년

박세영 기자 2022. 11. 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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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지의 수술 전(왼쪽) 모습과 수술 후(오른쪽)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한국을 찾아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을 성공적으로 치료받은 플란지(왼쪽)에게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귀국을 앞두고 덕담을 건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15cm이상 혹 커져…열악한 의료환경 탓 10년간 종양 방치

일상생활 어려워 중퇴…선교활동 의사, 아산병원에 지원 요청

최종우 교수 “영양상태 열악했지만 8시간 대수술 성공적”

입안에 생긴 얼굴만 한 거대종양으로 일상생활이 어렵고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동네에서 따돌림까지 받던 마다가스카르의 한 청년이 한국을 찾아 새삶을 선물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은 마다가스카르 오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입안에 얼굴만 한 크기의 종양을 방치해 온 플란지(22)의 거대세포육아종을 제거하고 아래턱 재건 및 입술 주변 연조직 성형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3일 밝혔다. 건강한 미소를 되찾은 플란지는 5일 귀국할 예정이다.

플란지는 8살 때 어금니 쪽에 통증이 있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치아를 뽑았다. 이때 발치가 잘못된 탓인지 플란지의 어금니 쪽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근처에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10여년간 방치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로,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플란지의 염증은 거대세포육아종으로 진행되며 점차 커졌다. 거대세포육아종은 100만 명당 한 명에게 발병한다고 알려진 만큼 희귀한 질환이다. 초기엔 약물로도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플란지의 경우 오랜 기간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해 종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거대해졌다. 플란지의 종양은 거대세포육아종 중에서도 심각하게 컸다.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이 입안에 생겨 플란지는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대화하는 것도 점차 힘들어졌고, 종양을 만지거나 잘못 부딪히면 출혈이 자주 발생해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들은 겉으로도 드러나는 거대한 종양 때문에 플란지를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 ’귀신 들린 아이‘라며 따돌리기 시작해 플란지는 다니던 학교까지 중퇴했다.

플란지가 살고있는 마을은 아프리카 남동쪽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도 약 2000km 떨어진 암바브알라다. 마을까지 이어지는 차도가 없어 이틀 정도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다. 마을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아 불을 피워 생활한다. 이렇다 할 의료기관은 물론 마을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고 간호사만 한 명 있다.

마을에서 3시간을 걸어나가면 병원이 하나 있지만, 그 곳 역시 한 명의 의사가 간단한 진료만 해줄 뿐이다. 플란지는 희망을 가지고 병원을 찾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들었다.

그렇게 10여 년간 종양을 방치해 오던 플란지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지난해 초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던 이재훈 의사가 그를 발견하면서다. 이 의사는 플란지의 거대한 종양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치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수술이 가능한 한국의 의료기관을 수소문하던 중 서울아산병원이 흔쾌히 응했다. 이 의사는 2018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선정한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서울아산병원과 인연이 있었다.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던 플란지는 한국을 가기 위해 약 1년간 입국 절차를 준비했고, 지난 8월31일 20여시간의 비행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최 교수팀은 지난 9월16일 치과, 이비인후과와 협진해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진행했다. 15cm 이상의 얼굴 크기만 한 종양, 무게는 무려 810g에 달하는 플란지의 거대육아세포종을 제거하고, 종양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던 아래턱을 종아리뼈를 이용해 재건한 뒤 종양 때문에 늘어나 있던 입과 입술을 정상적인 크기로 교정했다. 플란지는 영양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장시간의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염려됐지만 잘 이겨냈다.

플란지의 치료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플란지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내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어주시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평생 혹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감 밖에 없었는데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꿈이 생겼다”며 “선교사가 돼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플란지의 수술을 집도한 최 교수는 “다년간의 안면기형 치료 경험으로 노하우를 쌓아왔지만, 플란지의 경우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여서 전신마취를 잘 견딜지부터가 걱정이었고 종양 크기도 생각보다 거대해 염려가 컸다”면서 “플란지가 잘 버텨주어 건강하게 퇴원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고, 안면기형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극복해 앞으로는 자신감과 미소로 가득한 인생을 그려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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