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방향 잘못 정하면… 다른 것 잘해도 소용없더라

성유진 기자 2022. 11.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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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말호트라 맥킨지 미주총괄 회장 인터뷰
그래픽=김의균

시티그룹에서 일하다 2010년 마스터카드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긴 아자이 방가(현 마스터카드 회장)는 회사 계단에 걸린 ‘마스터 카드, 거래의 중심’이라는 슬로건을 보고 이런 의문을 품었다. “거래의 대부분은 현금으로 이뤄지는데 왜 우리 직원들은 (경쟁 카드사인) 비자, 아멕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걸까.” 그는 여러 조사 끝에 회사의 비전을 ‘현금 죽이기’로 재정의하고, 소형 가맹점 확대, 신흥국 시장 투자 등 비즈니스를 새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전체 거래의 15%밖에 되지 않는 시장 안에서 경쟁하느니 나머지 85%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의 재임 기간 중 마스터카드 수익은 3배, 시가총액은 13배 늘었다.

능력 있는 CEO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비크람 말호트라 미주 총괄 회장은 이런 의문을 품고 다른 맥킨지 시니어 파트너 두 명과 함께 제너럴 모터스의 메리 배라,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록히드마틴의 매릴린 휴슨,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등 각 업계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CEO 67명을 차례로 만났다.

말호트라 회장은 WEEKLY BIZ와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 연구 결과에 따르면 CEO의 자질과 리더십이 기업 성과의 40~45%를 좌우한다”며 “우리가 만난 CEO들 모두 회사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회사를 떠날 때 회사가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토대로 최근 ‘세계 최고의 CEO는 어떻게 일하는가(CEO Excellence)’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그는 “그들 대부분 글로벌 최정상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일반 기업의 리더에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CEO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말호트라 회장은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의 만남을 꼽았다. 그는 “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며 “나델라는 회사에 대한 담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조직 문화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딱 한 가지에 초점을 맞췄고, 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섬기는 겸손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했다.

2014년 2월 나델라가 MS를 맡았을 때 세상은 모바일 중심으로 바뀌는 중이었고, 개인용 컴퓨터(PC)를 주력으로 삼은 MS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나델라는 ‘책상마다 컴퓨터를’이라는 낡은 모토 대신 ‘세계 모든 사람과 조직이 더 많은 것을 이루도록 돕는 것’으로 회사 비전을 재정의했다. 이를 위해 링크드인(비즈니스 네트워킹), 깃허브(소프트웨어 개발 지식 공유) 등을 인수하고, 애플과 구글에 밀린 휴대전화 사업은 과감히 매각했다. ‘성장 마인드’를 새로운 문화로 채택하고 인사 평가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 여성 임금과 관련된 발언으로 논란이 됐을 때는 즉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훌륭한 CEO가 되는 것은 왜 어려운가.

“나델라는 ‘CEO로서의 진정한 도전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조직, 아무리 좋은 인재라 해도 CEO는 그에게 보고하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대담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실현할 책임도 CEO에게 있다. 명확한 비전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의 모든 부분을 하나로 묶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책에서 CEO의 책임을 방향 설정, 조직적 합의, 리더를 통한 조직 운영, 이사회와의 협업, 이해 관계자와의 소통, 개인의 효율성 관리 등 여섯 가지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CEO는 철인 10종 경기 선수와 비슷하다. 여섯 가지 모두 중요하고, 이 역할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를 꼽자면 ‘방향 설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비전이 적절하지 않다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비전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우리가 만난 거의 모든 CEO가 ‘세계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술과 고객 선호도 변화부터 새로운 경쟁 업체, 곧 닥칠 위협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했다. 그렇게 해야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이나 승산 없는 기술에 투자한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에 CEO들을 인터뷰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들이 시간을 쓰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업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뛰어난 CEO는 일반적으로 25~30%의 시간을 비전과 인수합병 전략, 자원 할당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쓴다. 30~40%는 조직을 구축하는 데 쓰고, 오직 5~10%만 일상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사용한다. 주변에 구축해 놓은 인재들이 이미 이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범한 CEO는 하루하루의 사업 운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CEO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적임자가 아니라면 빠르게 바꿔라”

CEO가 회사의 모든 것을 이끌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최고의 인재를 뽑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모든 회사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말호트라 회장은 CEO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졌던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언급했다.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10명 중 9명이 ‘인재를 선택할 때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특정 자리에 앉혔던 사람이 회사의 다음 여정에서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1~2년을 기다리지 말고 빠르게 교체하는 게 낫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인재는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

“사람이 아닌 역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회사의 직원이 5만명이어도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은 200개밖에 없다. CEO는 그 200개의 역할이 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인재들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가장 먼저 중요한 업무가 무엇인지 자문하고, 그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지식, 기술, 특성, 경험을 규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역할에 맞는 인재를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인재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

“능력뿐만 아니라 협동심과 결속력, 즉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부분 회사가 최고의 재무책임자, 최고의 IT 책임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협업이 안 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터뷰한 어느 CEO는 ‘스타들의 팀(team of stars)’이 아니라 ‘스타 팀(star team)’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의미로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은 경영진을 구성할 때 두 개의 C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는 ‘역량(capability)’, 다른 하나는 ‘협력(collegiality)’이다. 회의할 때도 단순한 담당 영역 보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보탤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사회의 도움을 받아라”

—CEO의 역할과 책임 면에서 과거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나.

“일단 현재의 CEO는 불확실성 속에서 훨씬 더 많은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20년 전만 해도 CEO에겐 시장과 트렌드를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좀 더 많은 시간 여유가 있었다. 오늘날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 단 몇 주일, 혹은 몇 시간밖에 없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CEO에 대한 외부 세계의 요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규제 기관부터 투자자, 애널리스트, 노동조합, 직원까지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즉시 대처해야 한다. 세 번째는 이사회가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즉 이사회를 교육하고 협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럼 회사의 목적과 가치, 필요를 판단해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어떤 CEO는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데 시간을 더 투자했고, 다른 CEO는 규제 당국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오늘날엔 외부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뚜렷하게 말해줄 수 있는 공식이 없다. 그러므로 회사의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만 일하면 끝이 없다.”

—이사회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어떤 사람들로 이사회를 꾸려야 할까.

“회사의 미래를 도울 수 있는 이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이사회는 회사와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과거의 비전에만 적합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회사의 지난 5년간의 요구와 앞으로 5년간의 요구는 분명 다를 것이다. 앞으로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인공지능 지식일 수도, 마케팅 지식일 수도, 규제 지식일 수도 있다. 만약 회사에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면 ‘이사회 구성원이 관련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그렇지 않다면 이사회를 교체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베스트 바이(북미 전자제품 판매 체인)의 허버트 졸리는 헬스케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건강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진 이사진을 영입했다. TIAA(미국교직원퇴직연금기금)의 로저 퍼거슨은 디지털 기술, 자산 관리 기술, 소매 자문 기술을 가진 이사가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DBS(싱가포르개발은행)의 피유시 굽타는 ‘은행 업무를 즐겁게 만드는 기술 회사’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이사회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이사진을 한국으로 데려갔다. 당시 디지털 부문에서 앞서 있던 한국의 여러 기술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모든 위험에 대비하라”

—CEO도 종종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실수를 빠르게 인식하고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우리가 만난 뛰어난 CEO들은 대부분 큰 실수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대담한 비전을 가진 동시에 훌륭한 위험 관리자였고,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해 신경 썼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정말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듀폰의 에드 브린은 ‘(다른 회사 경력까지 포함해) 21년이나 CEO로 일했지만 진짜 중요한 결정은 스무 번밖에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스무 번의 결정에선 모든 위험을 걱정하고 대비했다. 뛰어난 CEO들은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결과를 상정해 시나리오를 짰다. 에드 브린 역시 매번 결정에 앞서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의 시나리오를 짜고 그걸 감수해도 괜찮을지 자문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의 전 CEO 로드니 오닐은 ‘결정을 내릴 때는 2차, 3차, 4차로 무너질 도미노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아, 그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나겠군. 하지만 그런 일은 웬만하면 생기지 않을 테니 어쨌든 그냥 가보자’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크람 말호트라 맥킨지 미주 총괄 회장은 WEEKLY BIZ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만난 뛰어난 CEO들은 모두 비전과 담대함, 겸손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맥킨지

—팬데믹 기간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신이 만난 CEO들은 팬데믹에는 어떻게 대처했나.

“앞서 말했듯 최고의 CEO는 여러 실패·성공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 놓는다. 코로나를 예측하고 미리 대응할 수는 없었겠지만, 최고의 CEO들은 경쟁자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팬데믹을 예상하고 만든 건 아니었겠지만) 자본 조달, 유동성, 비용 등 모든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있었다. 또 이들은 팬데믹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 배운 걸 미래에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예컨대 팬데믹을 겪으면서 중간 관리층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 있었다.”

—최고의 CEO들에게 배운 교훈을 일반 기업이나 조직에도 적용 가능할까.

“방향 설정과 대담함, 공격적인 전략, 자원 할당 등에 관한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어떤 환경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사회나 외부 이해 관계자를 다루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쓸지에 대한 부분은 작은 회사들에는 조금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교훈의 적어도 3분의 2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방향 설정과 과감한 비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도 작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몇 년간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들이 대담하고 공격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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