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한 끼’ 위해 산·학·관 의기투합…과제는 ‘대상자 확대’[경향신문X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공동기획 먹거리로 돌보다]

최미랑·유명종 기자 2022. 11. 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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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모두에게 열린 커뮤니티키친
한진숙 동의과학대 교수가 부산 부산진구 온마을사랑채 초읍점에서 노인 영양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진구, 지역대학과 협업 운영
노인들 건강 상태·식습관 등 살펴
한 명당 최장 2년 동안 식사 제공

한진숙 동의과학대 호텔조리영양학부 교수는 3년째 고령자 식단 개발과 영양관리에 매진하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대상자를 위한 커뮤니티키친 온마을사랑채 고문을 맡고 있다. 온마을사랑채는 현재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에 한 곳, 초읍동에 한 곳이 운영 중이다.

한 교수는 부산진구의 어린이급식지원센터장이기도 하다. 영양과 위생에 방점을 두고 어린이 식사를 계획하던 그는 고령화사회에 노인 식단도 전문적인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식사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식사를 계획할 때는 건강 상태와 질병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맞춤형 식단이 필요한 이유다. 기호나 습관도 중요한 참고 사항이다.

“먼저 주야간 보호시설에 계신 어르신들 실태부터 파악해 봤어요. 보통 노인들은 죽이나 갈아서 만든 음식을 드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장을 살펴보면 달라요. 대부분 씹어서 드시는 음식을 원합니다.”

온마을사랑채에서 식단을 짜는 영양사들도 이런 점을 실감한다고 했다. 김지현 온마을사랑채 관리영양사는 “보통 어르신들은 한식 위주의 식단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햄버그스테이크나 스파게티 종류가 나갔을 때 굉장히 좋아하신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사’는 ‘삶의 질’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다.

영양사들은 앞서 일본과 독일의 노인 영양관리 사례를 면밀히 조사했다. 노인들이 냉동식품을 받아 데워 먹는 데 익숙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어르신들은 ‘따뜻한 밥’을 원한다.

온마을사랑채 김지윤·김지현·최소진 영양사(왼쪽부터)가 식사영양관리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받은 의견 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좋은 노년을 위한 요건

“밥이 보약인 줄을 생전 몰랐어요. 배만 부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난 10월5일 부산진구 개금3동주민센터에서 만난 정말영씨(84)는 요즘 전에 없이 활기찬 생활을 한다며 호쾌하게 말했다. “혈당이 떨어지니까 재미나서 매일 재요.” 여러 지병이 있는데도 “김치에 물 말아” 끼니를 때우곤 했던 정씨는 주민센터가 제공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식사영양관리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7월부터 온마을사랑채 범전점에서 만든 맞춤형 식사를 하루 한 끼 배달받는다.

같은 날 정오 무렵, 초읍동에 사는 조현화씨(81)는 중절모를 단정하게 쓰고 온마을사랑채 초읍점을 찾아 식사를 했다. 최근 고관절 수술을 받아 외출이 어려운 아내의 점심도 포장했다. “돈이 있어도 좋은 음식을 먹기 참 힘든 게 지금 아닌가? 대학에서 운영해서 그런지, 영양가 있고 깨끗하고…. 믿고 먹을 데가 있으니 참 좋네요.” 1996년부터 이 동네에서 살아온 그는 “노인을 위해 이런 데를 만들어주니 주민으로서 참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온마을사랑채로부터 식사를 제공받는다. 부담하는 비용은 각각 다르다.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로 생활하는 정씨는 한 달에 7만원만 낸다. 나머지 15만5000원은 주민센터에서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 예산(바우처)으로 지원한다.

비교적 넉넉한 연금으로 생활하는 조씨는 별도의 지원 없이 온마을사랑채를 찾을 때마다 5000~9000원을 내고 식사를 한다. 정씨처럼 한 달 동안 하루 한 끼를 배달받고 싶다면 22만5000원을 내면 된다.

노년에 ‘밥’이란 경제 사정을 떠나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2020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84%는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히 앓는 것은 고혈압(56.8%), 당뇨병(24.2%), 고지혈증(17.1%) 등으로 모두 식생활 관리가 중요한 질병이다. 영양관리에 주의 또는 개선이 필요한 사람도 27.8%로 나타났다.

온마을사랑채의 식사영양관리서비스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대상 지역인 부산진구 6개동 노인 모두에게 열려있다. 단 정부 예산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한 사람당 최장 2년까지만 가능하다. 이 기간이 지나면 전액을 자비로 부담하는 ‘일반 이용자’로 전환된다.

온마을사랑채 초읍점의 점심 메뉴.

■지역대학 중심의 협업

기업, 식자재 저렴하게 공급하고
행정은 돌봄 필요한 지역민 발굴
지역대학엔 학생 직업교육 기회

부산진구는 보건복지부가 2019년부터 시행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선도 지역 중 하나다. 대도시이면서도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는 점(2021년 6월 기준 19.9%)이 주요 선정 사유였다. 지난 3년간 지역사회 통합돌봄 예산을 기반으로 고령자를 위한 주거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을 기획해왔다.

정부로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예산을 받는 지자체들은 대부분 영양 관련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부산진구 사례가 독특한 점은 지역대학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진숙 교수는 “경제적으로 취약해서 식사를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먹거리 취약계층에 해당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복지 행정 담당자, 지역 자원봉사자, 식자재 관련 기업 그리고 동의과학대 산학협력단의 협업으로 온마을사랑채를 기획했다.

여러 주체가 자원을 합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온마을사랑채 초읍점이 노인을 위한 공동주택 ‘도란도란하우스’에 자리를 얻은 게 대표적이다. 부산진구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주거 지원 예산에 행정안전부의 지역사회 활성화 기반조성 사업 예산을 더해 만들었다. 이곳에 온마을사랑채가 들어오면서 인근 노인들에게도 식사를 제공하게 됐다.

“식자재 공급은 단가 문제가 제일 크거든요. 계절에 따라 가격이 크게 움직여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양사들은 빈 곳간에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 교수는 풀무원 푸드머스와 협업하는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식자재를 최저가로 공급받는 대신 푸드머스가 고령 친화 식품을 개발할 때 온마을사랑채 이용자를 대상으로 반응을 조사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식이다.

동주민센터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식사돌봄이 필요한 이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식사영양관리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된 주민은 인근 마을건강센터에서 마을간호사와 온마을사랑채 영양사를 만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식사에 대한 기초 상담을 받는다.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맞춤형 식사가 제공된다. 식사 배송자가 하루 1회 식사를 배송하고, 의견을 수집해 영양사들에게 전달한다.

지역대학 입장에서도 훌륭한 기회다. 한 교수는 “지역행정의 도움 없이는 벌일 수 없는 일”이라며 “전문대학의 특성상 학생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과의 접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특허를 따거나 기업에 기술 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기회 요인이다.

온마을사랑채의 실험은 다른 기초단체로 확산된다. 전북 부안군 백산면을 대상으로 식사영양관리서비스의 기술을 전수하고 컨설팅하는 일이 진행 중이다.

식사를 배달받는 이용자들은 의견 카드에 감사의 말을 남기기도 한다.

■품위 있는 식사를 더 많은 이에게

복지부 예산 지원 올해 말에 종료
취약계층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

식사영양관리서비스는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설계한 사업이지만, 취약계층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다. 지원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예산이 소진되면 대상자를 늘릴 수 없다. 식사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 만나는 복지사와 식사 배송 담당자들은 2년(바우처 지원 기간) 만기로 식사 지원이 곧 끊기는 상황에 놓였거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의 절실함을 매일 마주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축소하면 대상자 규모도 줄고, 식사의 질도 영향을 받는다. 올해 말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예산 지원은 종료된다. 내년부터는 부산시와 부산진구가 자체 확보한 예산으로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온마을사랑채는 식사의 질을 유지하면서 대상자를 넓혀나가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결식 아동을 지원하는 어린이 급식의 단가는 매년 인상되는 추세입니다. 최근 8000원까지 높인 지자체도 있고요. 노인 급식 지원 단가는 여전히 3500~4000원선이에요. 노년에도 품위 있는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의 장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진숙 교수의 부탁과도 같은 다짐이었다.

부산 | 글 최미랑 기자·사진 유명종 PD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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