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감싸안은 여인과 소년, 폭력에 저항… 무거운 울림
김예진 2022. 11. 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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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듯 변한 청록빛 나무 기둥.
어둠이 임박한 듯 유독 더 넓게 땅거미가 진 땅 위에선 한 여인이 소년과 같은 자세로 나무를 감싸고 지킨다.
시간은 청록빛 나무 기둥과 여인의 바지와 여인이 발 딛고 선 땅 사이의 색에 차이가 없을 만큼 흘러 한층 어둑해졌다.
하필 쓰러져가는 나무의 청록빛은 압사당한 희생자들 마지막 살갗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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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 ‘소소하지 않은 일상’전
곧 죽을 듯 변한 청록빛 나무 기둥. 숲엔 황혼이 깃들고 땅거미가 지고 있다. 모두 돌아갈 시간, 이대로 나무를 버려두고 떠날 수 없는 한 소년이 나무를 뒤로 감싸고 선다. 어둠이 임박한 듯 유독 더 넓게 땅거미가 진 땅 위에선 한 여인이 소년과 같은 자세로 나무를 감싸고 지킨다. 시간은 청록빛 나무 기둥과 여인의 바지와 여인이 발 딛고 선 땅 사이의 색에 차이가 없을 만큼 흘러 한층 어둑해졌다. 먼발치로 향한 여인의 시선은 그가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을 것을 각오했다는 표시다.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소하지 않은 일상(小小하지 않은 日常)’ 전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로맹 베르니니(43)의 유화 ‘칩코(Chipko)’ 연작이다. 힌디어로 ‘나무 껴안기’, ‘트리 허깅(Tree Hugging)’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는 칩코운동은 1970년대 초 인도에서 히말라야 지역 여성들이 주축이 돼 벌어졌던 비폭력 벌목 반대운동이다. 당시 산촌 여성들이 대규모 벌목에 반대하며 나무에 자신을 묶고 껴안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이를 소재로 한 로맹 베르니니의 작품은 합리성과 이성을 앞세운 근대 패러다임과 그 병폐에 맞서는 움직임, 인간의 오만을 지적하는 시선, 자연과의 공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담긴 작품으로 여겨져왔다. 그의 작품에선 무엇보다 파괴된 자연에 대한 애도가 색채감에 담겨 특유의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신비롭고 오묘한 분위기를 낸다.
서울대미술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재개된 첫 국제교류전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 50년 전 저항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나무도 지켰는데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세계에 유독 무거운 울림을 준다. 하필 쓰러져가는 나무의 청록빛은 압사당한 희생자들 마지막 살갗처럼 다가온다. 여러 나무들을 뒤로하고 홀로 선 인간의 두 발은, 인간이 저항할 권리를 가진 지구상 유일한 존재임을 의식하게 한다. 그 인간이 소년이나 여성 같은 약자일지라도, 그 힘이 결코 작지 않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27일까지.
글·사진=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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