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보다 경찰청장·장관이 참사를 늦게 알았다는 나라
하루하루 충격적으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압사 4시간 전부터 위급 상황을 알린 112신고가 묵살된 일이 1일 공개되더니, 2일엔 대통령보다 안전 주무장관과 경찰청장이 사태를 늦게 보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의 재난 보고·지휘 체계가 아래도 위도 다 허물어진 것이다. 촌각을 다퉜어야 할 참사 대응이 왜 이리 늦고 허둥댔는지, 사상자는 왜 그리 많아졌는지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밤 10시15분에 시작된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고 발생 46분 후인 11시1분에 첫 보고를 받았다. 이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럽출장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11시20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11시36분, 윤희근 경찰청장이 자정을 넘겨 0시14분에 사태를 접했다고 한다. 사고 수습을 총지휘해야 할 경찰청장이 대통령보다 73분이나 늦게 보고받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소방청 상황실에서 온 참사 보고를 국정상황실장에게서 받고, 경찰·소방 업무를 주관하는 이 장관은 두 기관 직보가 아니라 비서관이 전한 행안부 내부 알림 문자를 봤다고 한다. 헌법이 정한 재난 보고·지휘 체계는 처참히 무너졌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그 결과는 모두 목격한 대로다. 참사 현장의 구급차 진입로는 11시에야 열렸고, 집에서 늑장보고를 받은 서울경찰청장은 압사 130분이 지난 0시25분에 현장 지휘를 시작했다. 그 후 0시58분이 돼서야 인접한 11개 경찰서에서 1371명이 이태원에 지원됐다. 경찰청장이 수습 회의를 주재한 새벽 2시30분엔 희생자가 이미 100명이 넘어섰다. 당연히 지휘 혼선도 컸다. 윤 대통령이 첫 지시를 내린 11시21분엔 경찰 수뇌부가 상황 자체를 모를 때였고, 반대로 0시42분에 떨어진 윤 대통령의 ‘앰뷸런스 이동로 확보’ 지시는 23분 전 경찰청장이 했던 ‘뒷북 지시’였다. 서울경찰청·용산서 112 상황실은 이태원파출소에 상황 대처를 떠넘기고, 위에선 컨트롤타워 없는 늑장·부실 대응이 인명 피해를 키운 것이다. 그래놓고도 주무장관은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힘들었다’ 하고, 대통령실은 ‘요청이 없으면 경찰은 통제할 권한이 없다’고 해명해 시민의 염장을 질렀다.
무너진 국가의 안전관리 체계에 시민은 분노하고 있다. 유족들은 장례 후 국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용산서와 112 상황실을 겨눈 경찰 수사는 시작일 뿐이다. 진실 규명에 성역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실·행안부·지자체·경찰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든, 상설특검이든, 독립된 수사기구든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대책을 세우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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