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주변 집회 통제하느라‥이태원 현장 지휘 '공백'
[뉴스데스크] ◀ 앵커 ▶
사고 예방과 현장 지휘의 책임이 있었던 용산 경찰서장은 참사가 시작된 뒤인 10시 17분이 돼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태원 상황이 심각한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 전까지 용산에서 벌어진 집회 통제를 지휘하고 있었던 건데요.
집회 현장에 투입됐던 경찰 기동대 역시, 이태원 쪽으로 이동한 인력은 참사가 벌어지기 전까지 없었습니다.
손구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참사 당일인 29일 오후, 광화문에서 시작된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시위는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역 근처로 이어졌습니다.
밤 9시 무렵까지 삼각지역 일대에서 참가자 만여 명 규모의 집회가 계속된 겁니다.
이때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 등 경비과장, 정보과장, 수사과장 등 용산서 간부들은 집회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집회현장 일대에 투입된 기동대도 천 백명 수준에 달했습니다.
이미 이태원에서 압사 위기를 경고하는 112 신고가 잇따르던 상황이었지만, 관할 경찰서 지휘부와 기동대는 집회 관리에 주력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날 기동대는 광화문과 용산, 여의도, 또 집회가 없었던 서초 권역에 배치됐는데 용산에 투입된 기동대 중에서 사고 전에 이태원에 투입된 인력은 없었습니다.
용산서장 등 간부들은 집회가 끝나고 밤 9시 20분 현장을 철수했고, 참사가 시작된 직후인 10시 17분이 돼서야 이태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마저도 직속인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보고한 시간은 그로부터도 한 시간 이상 훌쩍 지난 11시 36분이었습니다.
[황창선/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 "용산서장 보고 지연과 관련돼서는 아마도 이번 사고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특히 저녁이 되면서 대통령실 주변의 집회 참가자들은 줄어들고 있었는데도, 이태원 쪽으로 재배치 된 기동대 인력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실 근처에서 야간 대기하던 기동대 1개 부대가 뒤늦게 이태원에 투입된 건 밤 11시 25분.
참사가 시작된 지 1시간 이상 지나서였습니다.
스무명 남짓한 이태원파출소 경찰관들만 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는데, 사고 전에 내려온 지시 중에는 무단횡단 통제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이태원파출소 경찰관] "인도가 넘쳐날 정도로‥ 사람들이 막 무단횡단 하고 하니까 지시사항으로 애들 이제 장비 챙겨서 보냈거든요."
오히려 무단횡단을 막을 게 아니라 늦게라도 차량 흐름을 통제하고 인도에 갇혀있던 인파가 차도로 나올 수 있도록 열어줬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터져나왔습니다.
MBC뉴스 손구민입니다.
영상취재: 이준하 김백승/영상편집: 장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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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 이준하 김백승/영상편집: 장예은
손구민 기자(kmsoh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23579_35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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