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자세

뉴스타파 2022. 11. 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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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시민 156명이 사람에 끼어 숨지는 유례없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반만에 우리는 또다시 그때와 똑같은 질문, 즉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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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시민 156명이 사람에 끼어 숨지는 유례없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반만에 우리는 또다시 그때와 똑같은 질문, 즉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분명해보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선 바로 다음 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안심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대형 참사가 일어나자 그의 핵심 참모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 2022.10.30

정확한 사고원인이 나오기 전까지 섣부른 추측이나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 2022.10.31

이번 이태원 참사에 정부가 전적인 책임을 질 생각은 없으며, 특히 현재의 집권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주장은 미리 차단하겠다는 선전포고처럼 들렸습니다. 문제는 이 장관의 발언 뿐만이 아닙니다. 정부가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징후는 이미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여러 군데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

참사는 사고로, 희생자는 사망자로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달 30일, 행정안전부 회의 비공개 자료에는 "사고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를 사용"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행안부는 이 내용을 전국 지자체에 지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참사 다음날 전국에 설치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도 이 지시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발언과 지시는 이태원 참사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과 이에 따른 배상책임을 인정해 온 대법원 판례를 피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사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경찰 정보부서가 작성한 문건을 보면, 정부가 성금 모금을 주도하고 여기에 정부가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법적 책임, 즉 정부의 잘못에 따른 배상금이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지난달 30일 한동훈 장관이 "피해회복을 위한 법률 지원"을 지시한 것 역시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이 제기되면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법무부가 법률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책임이 없다고 선을 긋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최자 없는 행사'라 경찰 책임 아니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이틀만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안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 얘기를 뒤집으면,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기 때문에 안전 관리 시스템이 없었고, 그래서 참사가 일어났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경찰이 안전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경찰청이 발주한 연구용역 내용을 보면,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경찰의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청은 심지어 용역의 결론대로 이를 안전관리 매뉴얼 개정에 활용하겠다는 평가보고서까지 냈지만 실제로는 안전관리 매뉴얼을 개정하지 않았습니다. 

2년전 개정된 경찰법에도 주최없는 행사에 대한 경찰의 안전 관리 책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난 2020년 국회는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며 경찰법을 개정했는데, 주최자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를 경찰의 사무로 명시했습니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를 보더라도, 모든 행사에서의 안전 관리 의무를 경찰에 지우고 있습니다. 

참사 책임 회피하는 한국 정부... 일본과 홍콩은?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자 "경찰이 적극 조치할 수 있을만한 법과 제도가 미비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말 자체도 사실이 아니지만, 설령 법과 제도가 미비했다면 그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망각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발언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건들로 이미 많은 시민들이 희생됐습니다. 그 희생으로부터 얻어야했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역시 국가의 책임입니다.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참사를 겪었던 홍콩과 일본의 사례를 취재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시면 과연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여러 대응을 보면,  이 사건을 박근혜 정부 당시의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인 폭발력을 가진 사건으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매우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에서도, 경찰 정보 부서의 문건에서도 그런 의도가 엿보이는 표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든 건, 정작 박근혜 정부 자신이었습니다. 책임 회피와 자료 은폐, 유족에 대한 사찰과 노골적인 진상규명 방해 등이 쌓이면서 정권 자체가 국민적 불신을 사게됐던 것이죠. 세월호 참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이 사건을 세월호 참사처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윤석열 정부는 깊이 성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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