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책임 회피하는 한국 정부...일본과 홍콩은?
이태원 참사 발생 초기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우리와 유사한 참사를 겪었던 해외 각국 사례를 통해 다른 나라들은 국가가 어떻게 책임을 졌고,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분석했다.
홍콩
지난 1993년 새해 첫날 홍콩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홍콩의 이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란콰이퐁(Lan Kwai Fong) 거리는 폭 5m 가량의 좁고 경사진 골목이 이어지는, 이태원과 유사한 지형이다. 술집과 바, 식당이 밀집한 유흥 지구라는 점도 비슷하다.
새해를 맞으려 2만 명 가까운 홍콩 시민들이 이 곳에 모여 길거리 파티를 즐겼다. 새해 카운트다운까지 란콰이퐁 고지대에서 축하 공연도 진행됐다. 공연이 끝나고 인파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다수의 군중이 한꺼번에 저지대의 골목으로 내려왔고, 저지대에 골목에 있던 참석자들이 넘어지며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쳤다. 피해자는 대부분 10대와 20대였다. 사고 지점의 노면은 맥주, 샴페인 등 주류와 에어로졸 스프레이 거품 등이 뿌려져 있어 미끄러웠다.
크리스 패튼 당시 홍콩 총독은 사고 직후, 케말 보크하리 홍콩고등법원 판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해 신속히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사고 17일 후에 중간 보고서가, 50여일 만인 2월 23일 최종 보고서, 일명 ‘보크하리 보고서’가 나왔다. 취재진은 이 보고서를 연구한 2017년 하버드대학교 공공보건대학원 보고서를 통해 당시 참사 상황과 홍콩경찰의 대응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보크하리는 참사의 최종 원인으로 군중 과밀, 혼돈 상태의 군중 흐름, 군중의 음주 분위기, 미끄러운 도로 등 4가지를 꼽았다. 그러나 이 외에도 주요한 원인으로 경찰의 군중 관리 실패를 지목했다. 보크하리는 현장에 118명의 경찰관이 배치됐으나 “군중의 규모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며 "경찰이 군중 사이를 편하게 보행 순찰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면 위험한 군중 밀집으로 보고 행인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안전 대책 미리 발표…후속 위험평가도 실시
보고서는 위험이 감지되는 상황에서의 강력한 경찰력 및 보행 순찰대 동원, 출입 통제를 통한 군중 집중 조절, 단방향 교통 질서 수립, 군중을 집중시킬만한 무대 설치 금지 등 14개 권고사항을 담았다.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강력한 경찰력 동원을 권고한 보고서에 대해 공공장소에서 위험 요소가 있으면 경찰이 통제할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기사를 냈다. 이에 대해 홍콩 경찰은 이 같은 논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록이어 홍콩경찰 서장은 “경위급(inspector) 이상의 경찰관은 어떤 공개 집회라도 평화에 위배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홍콩 경찰은 주최 측이 있건 없건 특정 행사나 특정 지역에 군중 밀집이 예상된다면 적극적인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연말연시, 핼러윈, 크리스마스 등 주요 휴일 이전에 미리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군중 안전 관리, 지참 금지 물품, 주차 통제, 도로 폐쇄 등의 조치 계획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행사가 끝날 때마다 자체적으로 위험 평가를 해 향후 조치 방안을 결정한다고도 한다.
참사에는 국가의 책임이 따른다. 홍콩이 사고 직후 조사위원회에서 참사의 원인과 권고 사항을 수렴한 이유다. 국가가 시민의 안전 책무를 진다는 것은 상식적인 명제다. 한국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은 다양하다. 만일 사고를 예방할 제도가 미비했다면 국가는 제도를 보완한다. 이렇게 해서 이후 발생할 비슷한 참사를 막는 게 그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홍콩은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었다. 한국과 비슷한 참사를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일본은 21년 전 비슷한 참사를 겪었다. 2001년 7월 21일,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시민 여름 축제가 열렸다. 이날 저녁 불꽃놀이 행사가 열린 해안가와 전철역을 잇는 육교에서 일이 터졌다. 해안으로 향하는 시민들, 그리고 반대로 돌아오는 시민들이 육교 위에 한데 몰려 이태원 참사 때와 닮은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불꽃놀이가 끝나기 직전부터는 해안가에서 육교로 돌아오는 시민들이 늘어나 “1㎡(제곱미터)당 13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과밀 상태”가 됐다. 결국 대규모 인파가 밀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9세 이하 어린이 9명, 70대 여성 2명 등 모두 11명이 흉부 압박에 의한 호흡곤란 등으로 숨지고, 247명(아카시시 조사보고서 기준)이 다쳤다. 오가타 노부히로 당시 시장은 이 참사와 함께 같은 해 12월 발생한 또 다른 인명 사고의 책임을 지고 2003년 임기 도중 사임했다.
참사 발생 직후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주최 측인 아카시시는 사고 직후 법조, 위기관리 및 재해 분야 등 제3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듬해 2월까지 7개월간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는 뼈아팠다. 아카시시 시민 여름 축제는 예년 기준으로 12만~15만 명이 몰리는 대규모 축제였다. 조사보고서는 “올해(2001년)도 작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사람이 모이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주최 측인 아카시 시와 경찰 당국, 경비 위탁계약을 맺은 민간경비회사 모두 “면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고 적시했다.
조사위원회는 또 “육교 및 그 부근의 혼잡 정리, 군중 유도, 그 방법의 홍보 등에 대해서 적절하고 구체적 수단을 강구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불꽃놀이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아카시시 경찰 당국의 주된 관심은 폭주족 단속이었다. 반면 “(관할 경찰이) 적극적으로 군중을 정리할 방법이나 위험 방지 조치안에 대해 협의가 이뤄진 흔적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조사위원회는 밝혔다. 보고서 전문과 조사 자료, 위원회 활동 내역 등은 21년이 지난 지금도 아카시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당국 책임 인정…20년 넘게 애도·반성
책무를 게을리했던 경찰과 지자체, 민간경비회사 측 모두 형사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경비 본부 지휘관이었던 아카시시 경찰 간부와 경비업체 지사장, 시 공무원 3명 등 총 5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간부와 경비회사 지사장은 금고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시 공무원들은 2년 6개월의 금고형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특히 경비 책임자인 경찰 간부가 당시 혼잡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봤다. 또 기동대 투입을 검토해달라는 부하의 요청까지 받고도 시민들의 유입을 통제하도록 현장을 지휘하거나 기동대를 출동시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이른바 ‘혼잡 사고’와 관련해 경비 담당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참사 희생자들에게 배상할 책임도 지자체와 경찰에 있었다. 유족들은 아카시시와 효고현 경찰, 경비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들이 유족들에게 총 5억 6800만 엔, 즉 한화로 50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시와 경찰, 경비회사 모두 항소하지 않고 판결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특히 관할 경찰의 무책임을 신랄하게 꾸짖었다.
“폭주족 대책에만 사로잡혀, 혼잡 경비에 대해서는 주최 측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며, 경찰이 실시할 책임은 없다고 하는 바, 말하자면 혼잡 경비에 관해서 참가자의 생명, 신체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경찰의 책무를 포기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2005.6.28 고베지방재판소)
2001년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놀이 육교 참사를 계기로 일본은 경비 관계법령과 지침을 재정비했다. 일본 경찰백서에 따르면 참사 이후 경찰본부에는 ‘혼잡 경비 실시 지도관’을, 관할 경찰서에는 ‘혼잡 경비 실시 주임자’를 지정해 사고 예방 책임을 강화했다.
안이한 대응으로 육교 참사를 초래했던 효고현 경찰은 이듬해인 2002년, 군집 상황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인파 유도, 공간 배치, 홍보 대책 등을 집대성한 120장 분량의 안내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발간사에 따르면 아카시시 참사로 “혼잡의 무서움, 나아가 혼잡 경비가 경찰 활동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재인식”했다는 반성의 산물이다. 효고현 경찰은 또 전국 최초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전문가들을 ‘혼잡 경비 고문’으로 위촉해 경비 대책 관련 조언을 구하고 각급 경찰관을 교육하고 있다.
참사 현장인 육교 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힌 위령비가 있다. 행정적 변화만큼 주목할 점은 ‘잊지 않으려는’ 당국의 태도와 노력이다. 아카시시 당국은 참사가 일어난 7월 21일을 ‘시민 안전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희생자 애도, 안전 교육 행사를 한다. 2005년에는 희생자 11명을 기리는 조형물을 불꽃놀이 현장이었던 해안가에 설치했다. 참사 20주기를 맞은 지난해 시민 안전의 날, 아카시시 시장은 시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 사고의 교훈을 풍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2021.7.21 이즈미 후사호 아카시시 시장)
영국
영국의 ‘힐스버러 참사’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유족들이 수십 년 동안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세월호 참사와 함께 종종 언급됐다. 힐스버러 참사는 발생 이후 무려 27년 만에 '공권력의 책임'이라는 진실이 밝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이는 온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영국의 사법 시스템은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영국 사회가 이 참사를 다룬 방식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사회는 약 30년 동안 이 참사를 다시 들여다보고 다시 조사했다. 물론 여기에는 끈질기게 진실을 물어온 참사 유족들이 있었다.
영국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에 발생했다. 당시는 축구 관중석에 좌식 외에 입식 관중석이 있었다. 이 입식 관중석에 축구 팬들이 과도하게 몰렸고 결국 96명이 사망했다. 이미 정원이 꽉 차 있던 입식 관중석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연 것은 경찰이었다. 그러나 사고 직후 경찰은 흥분한 관중들(훌리건)을 탓했다. 관할 경찰서였던 사우스 요크셔 경찰서의 데이비드 더켄필드 서장은 “관중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거짓말했다.
사고 발생 이틀 만인 17일, 영국 내무부장관은 테일러 판사를 지명해 사고 조사를 하게 했다. 테일러 판사는 4개월 뒤인 1989년 8월에 중간 보고서를, 1년 뒤인 1990년 1월에 최종 보고서를 냈다. ‘테일러 보고서’라고 불리는 이 보고서에는 참사의 주요 원인이 ‘경찰의 통제 실패’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경찰 책임자에 대한 기소는 형사 처벌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영국 사회는 더 질문을 이어갔다. 참사 20주년이 되던 2009년, 영국은 또다시 진상 규명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힐스버러 독립조사단’(Hillsborough Independent Panel)이 꾸려졌다. 독립조사단은 2012년, “현장에서 경찰이 군중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초기 응급조치의 실패로 41명의 사망을 초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초기에 긴급 구조가 제대로 됐다면 96명 가운데 41명의 목숨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힐스버러 참사' 경찰 책임 묻고 또 물었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힐스버러 참사에 대한 새로운 심리가 시작됐다. 희생자들의 사망 원인을 가리는 재심리였다. 2016년 4월, 9명의 배심원단은 힐스버러 참사로 사망한 피해자들이 “불법적으로 죽임을 당한 것(unlawfully killed)”이라는 결론을 냈다. 참사 이후 27년 만이었다.
이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14개의 질문에 답을 했다. ▲사고 전, 경찰의 계획과 준비에 업무상 과실(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는가 ▲사고 당일 경찰의 대응에 업무상 과실(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는가 ▲경찰 지휘관의 업무상 과실(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는가 등이다. 배심원단은 이들의 죽음을 야기한 것은 축구 팬들의 행동이 아니었고, 경찰의 업무상 과실이라고 평결했다. 30년 가까이 공권력의 책임을 물어온 결과다. 판결 이후 2017년, 영국 검찰은 다시 당시 경찰 책임자 6명을 기소했다. 더켄필드 서장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수십 년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2019년 재판부는 더켄필드 서장에게 과실치사의 죄를 묻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경찰 책임자였던 도널드 덴튼과 앨런 포스터, 그리고 당시 경찰 대리인인 피터 멧캘프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오직 축구장 관리자에게만 6500파운드(현 환율 기준 한화 약 10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형 참사 이후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자국민과 주변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해마다 전 세계의 무슬림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이슬람 성지 메카를 찾아 순례하는 기간인 ‘하지’(Hajj). 사사우디에선 2015년 하지 기간에 최대 2400명의 순례자가 압사한 참사가 일어났다.
두 개 행렬이 길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서 순례자들은 멈추지 못하고 충돌하고 짓눌리며 사망자가 속출했다. 10분여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참사 이후 줄곧 사우디 정부 대응은 신뢰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 정부가 집계한 사망자는 769명이었는데, 당시 현장에 자국민 순례자가 포함돼 있었던 36개국 공식 발표를 AP통신이 집계했더니 사망자는 2400명이 넘었다.
사우디 정부는 조사를 약속했지만 조사 여부와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무슬림 단체인 이슬람공공문제위원회는 사우디 정부에서 독립된 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향후 하지 행사 관리 권한을 포기하라고 요구했으나 사우디 측은 거절했다.
사우디 정부 무책임에 주변국 비판 쏟아져
자국민 다수가 사망한 이란, 인도네시아 등은 사우디 정부의 하지 행사 관리가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란 정부는 자국민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살해됐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메카에서 군중 압사 참사는 처음이 아니었다. 매년 하지 기간에 메카에서는 화재, 압사 사고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2006년에도 360여 명이 사망한 후 사우디 정부는 도로를 확장한 바 있다.
전 세계 군중 관리 전문가들은 사우디 정부에 컨설팅을 제공했지만 사우디 측은 순례자 전자팔찌 도입, 표지판 설치 등의 조치만 취했다고 한다.
우리 법은 아무런 죄가 없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제4조(국가 등의 책무)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강조했다. 주최 측이 없는 행사를 관리할 매뉴얼이 없으며, 집회나 시위가 아닌 행사는 경찰이 개입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이 개입할 권한이 없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는 점은 앞서 뉴스타파 보도에서도 짚었다.
주최 측이 있는 행사를 관리하기 위한 매뉴얼이 따로 만들어져 있기는 하다. 행정안전부에서 만든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이다. 재난안전법 제66조의 11 ‘지역축제 개최시 안전관리조치’에 의거한 매뉴얼이다. 이는 특정 상황에 대비한 업무상의 지침에 불과할 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와 공권력의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참사 직후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는 재난기본법의 취지를 오독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우리나라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여러 차례 압사 사고를 겪었다. 2005년 경북 상주에서 열린 상주자전거축제장에서 인파가 몰리면서 11명이 숨졌고, 이듬해인 2006년 롯데월드에서는 35명이 다쳤다. 이밖에도 용산역 귀성객 압사 사고(1974년), 보신각 타종행사 압사 사고(2000년) 등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에) 주최자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책임이 아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주최자가 없는 축제에 참여한 사람은 우리 국민이 아닙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어 “지역의 안전관리, 지역의 재난 관리 시스템이 모여서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이 되고 이러한 것들이 매우 정밀하고 정교하게 구축이 되어 있다”며 “이런 시스템들이 왜 이렇게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동이 안 됐는지…마치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 강혜인 김지윤 이명주 홍우람 오대양
촬영 오준식 김기철 정형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뉴스타파 오대양 ody@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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