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경찰청, 어떤 행사든 책임진다는 용역 7년간 무시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는 선제적인 안전 관리가 쉽지 않는 상황입니다…(중략)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같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사고 예방 관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 / 2022. 10. 31
이태원 참사 이후 대통령실이 내놓은 공식 발언이다. 이태원 핼러윈데이처럼 주최자가 따로 없는 자발적 행사의 안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할 여건이 안 됐고 따라서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지금까지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국가의 책임은 없었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정말 그럴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경찰청은 수년 전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경찰의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용역을 수행했고, 심지어 용역의 결론대로 안전관리 매뉴얼 개정에 활용하겠다는 평가보고서까지 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2년 전 개정된 경찰법에도 ‘지역 내 모든 행사의 안전 관리’를 경찰의 사무로 명시해 법적 근거까지 마련했다. 이렇게 모든 행사에 경찰의 안전 관리 의무가 연구용역과 법률로 뒷받침돼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했다.
7년 전, 3천만 원 경찰청 용역에 "주최 없는 행사 안전관리는 경찰"
경찰청은 2015년 7월, 많은 인파가 몰리는 군중 행사의 안전 관리를 주제로 정부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맡았다. 3개월 후인 그해 10월, 연구진은 용역 결과보고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를 경찰청장에게 제출했다.
세금 3,000만 원이 들어간 이 용역보고서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다중 운집 행사의 안전을 위해 경찰이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먼저, 다중 운집 행사의 경우 사소한 계기로 혼란 상태가 유발되고 사망자가 생기는 등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 다중 운집 행사에 경찰이 개입해야 한다고 답한 국민이 2/3가 넘는 79% 나왔다는 조사 결과도 함께 내놨다.
200쪽이 넘는 용역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지점은 이태원 핼러윈데이처럼, 행사 주최자가 분명하지 않거나 없을 때, 경찰이 질서 유지를 위해 어디까지 나서야 하는지 언급한 대목이다. 연구진은 일본 오사카 사례를 주목했다.
행사 주최가 불분명한 다중운집 상황 즉, 매년 특정 장소에 신년 카운트다운을 위해 젊은이가 자연적으로 운집하는 경우에는 관할 경찰서장이 책임 하에 사건사고 방지를 위한 활동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있다.
- 경찰청 용역보고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64쪽
그리고 '행사의 유형과 주체에 관계 없이 모든 행사의 안전을 경찰이 담당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경찰에 이렇게 제안했다.
행사의 유형과 주체에 관계 없이 위험성의 판단과 관리 및 감독을 담당하는 것은 안전전문가인 경찰의 임무이며, 또한 국민들이 경찰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행사장에의 경찰의 직접 개입은 선택사항일 수 있으나 행사의 위험성 진단과 감독은 경찰의 역할이며, 모든 행사 시 경찰이 점검해야만 하는 필수사항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 경찰청 용역보고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175쪽
보고서는 또 경찰이 개입할지 판단하기 위해 행사의 위험성 요소 평가 항목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평가 항목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①행사 인원에 비해 출입구 수가 부족하지 않은지, ②비상출입문은 정상 확보되어 있는지, ③출입로 계단 등 이동로가 좁거나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지, ④환자 후송 등을 위한 행사장 내 긴급이동로가 제대로 확보되었는지 등이다.
이 평가 항목은 2014년 경찰청이 만든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있는 점검 지표와 동일하다. 이번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곳이 좁고 경사진 내리막길이었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다.
경찰청은 이 용역 보고서를 제출받고 ‘정책연구 활용 결과보고서’도 작성해 연구보고서에 나온 결과를 “정책에 반영”했다고 썼다. 특히 경찰청은 이 용역보고서의 활용 결과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①“행사 안전관리 계획 수립 시 적정 경찰력 배치모델 활용 중”, ②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개정 시 활용”이다.
그러나 결국 이는 말뿐이었다. 경찰청은 3,000만 원의 세금을 들여 용역 보고서를 만들어 놓고도 지난 7년 동안 대책은 세우지 않았다. 이번 참사가 나고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서도 시민들의 안전이 철저히 담보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해외사례 등을 참고하여 전문가들과 함께 과학적 관리기법도 모색하겠습니다.
- 한덕수 국무총리 / 2022. 11. 1
2년 전 개정된 경찰법에도, '다중 운집 행사에 안전 관리'를 경찰의 사무로 명시
주최자가 있든 없든 모든 행사의 안전 관리가 경찰의 업무라는 건, 이미 2년 전 법 개정을 통해서도 규정돼 있다. 지난 2020년 국회는 자치경찰제도를 도입하며 경찰법을 개정했는데, 주최자가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를 경찰의 사무로 명시했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 심사소위에서 장지원 전문위원은 법안 개정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영배 의원 안은 공공시설과 지역행사장 등의 지역 경비에 관한 사무로서 1)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 청사에 대한 경비, 2)지역축제 등 각종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 사무로 정하셨었는데, 서범수 의원안은 이를 통폐합하여 지역 내 다중운집 행사 관련 혼잡 교통 및 안전 관리로 하셨고 기본적으로 서범수 의원안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 장지원 국회 행정안전위 전문위원 / 제382회 국회 행정안전소위 제6차(2020.12.1.)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위험 발생의 방지 등)에도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경고, 억류, 피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역시 모든 행사에서의 안전관리 의무를 경찰에 지우고 있다.
참사 사흘째인 지난 1일, 참사 4시간 전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잇따라 왔는데도 경찰이 대응을 못 하는 등 초동 대처의 난맥상이 드러나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결국 머리를 숙였다.
7년 전 자신들의 정부 용역에서 모든 행사의 안전은 경찰이 책임져야 하며, 2년 전에는 경찰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까지 마련돼 있는데도, 경찰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주최가 없는 행사에 안전 매뉴얼은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뉴스타파 강민수 cominso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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