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는 사고로, 희생자는 사망자로...'이태원 참사'에 대처하는 윤석열 정부의 자세

한상진 2022. 11. 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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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 책임자들이 ‘이태원 참사’ 직후 한 발언과 지시가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사법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달 30일 이상민 장관은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뉴스타파가 확보한 이날 행정안전부 회의 비공개 자료에는 “사고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 사용(하라)”고 적혀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 내용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지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참사 다음날 전국에 설치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도 이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을 거친 판사 출신이다.

이러한 발언과 지시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건에서 국가의 법적 책임과 이에 따른 배상책임을 인정해 온 대법원 판례를 피하려는 포석이란 분석이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은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일단 이 조항은 경찰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회의 자료.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용어를 통일하라는 내용의 중대본 회의 결과를 전국 지자체에 전파했다.  

"사고, 사망자로 용어 통일"... 참사 다음날 한덕수 총리 중대본에서 지자체 전파

하지만 대법원은 ‘국가가 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배상책임을 진다’고 판결해왔다. 1998년 대법원은 “제5조는 형식상 경찰관에게 재량에 의한 직무수행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경찰관이 그 권한을 행사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권한의 불행사는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되어 위법하게 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도 1998년 판례를 인용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 움직임은 이태원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주더라도 법적 책임, 즉 정부의 잘못에 따른 배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참사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경찰청이 작성한, 언론과 시민단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문건(특별취급 정책 참고자료)에서도 정부가 성금 모금을 주도하고 여기에 정부가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문건을 보면 “(이태원 희생자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1500만원은) 통상 대형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향후 보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슈화할 소지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 애도 분위기 속 성금 모금을 검토하고 정부도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측근이라고 불리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몰라도 법적 책임만은 없다고 했다. 유상범 의원은 지난 1일 MBC 라디오에 나와 “법적 책임은 아주 복잡하다. (행사 주최자가 없어) 안전 관리 주체가 없다는 것은 안전 관리를 할 의무자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책임 문제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이 있다”며 “치안을 관리하고 지자체가 있으니까 ‘너희들이 왜 책임이 없느냐’라고 단순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은 정치적·도의적 책임 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른 경찰의 질서유지 의무는 주최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지 않는다.

이 밖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사고 당일인 지난달 30일 “피해회복을 위한 법률지원 등 사상자와 유족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국가 상대 소송을 잘 아는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배상책임이 쟁점이며,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배상소송이 제기되면 법무부 장관이 피고 대한민국의 대표자가 된다”면서 “법무부로서는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이런 소송을 지원할 수는 없는데도, 법률지원을 하겠다는 발언은 국가 책임이 없다고 선을 긋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한동훈 장관의 발언이 “피해가 회복되도록 제반규정을 찾아서 도와주라는 원론에 불과하며, 그나마 국가의 책임이 아닌 선의에 의한 지원이란 의미”라는 설명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한동훈 장관은 앞으로 제기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국가 상대 배상 소송에서 원고들과 맞서는 피고 대한민국 대표자로 나서게 된다.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정부는 참사 다음날 분향소 이름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로 정했다.  

'이태원 참사' 경찰 책임 확인...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정부 책임 없다?' 

1일 오전 윤희근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의 잘못을 인정했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112 신고센터에 사건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된 사실을 공개했다. 같은 날 오후 경찰이 공개한 112 신고내역에는 참사 4시간 전부터 참사가 벌어진 장소에서 여러 명의 시민들이 신고한 내역이 들어 있다. “압사 당할 것 같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있다”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등의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경찰 단계까지 책임은 확인됐다.

경찰의 책임, 나아가 정부의 책임이 드러났지만 정부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참사 희생자’를 ‘사망자’로 보는 태도는 여전하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정부의 책임을 감추려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지금도 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를 제외한 전국에 있는 정부 설치 분향소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

뉴스타파 한상진 greenfish@newstapa.org

뉴스타파 이범준 seirot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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