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걷는다, 광각” 입력하자 20초만에 잡지 표지가…
미국의 유명 잡지사 코즈모폴리턴은 지난 6월 전 세계 잡지 중 최초로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을 표지로 채택했다. 화성 표면을 걷는 우주 비행사를 담은 이 그림은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딥러닝 방식의 이미지 생성 소프트웨어 ‘달리(Dall-E) 2′가 만들었다. 코즈모폴리턴은 “협업한 디지털 아티스트 카렌 쳉이 달리2에 ‘무한한 우주, 신스웨이브(일렉트로닉 음악 장르), 화성에서 카메라 쪽으로 걸어가는 여성 우주 비행사를 아래에서 광각 촬영’이라는 문구를 입력하자 단 20초 만에 표지가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AI의 새로운 개척자’라는 제목과 함께 ‘미드저니’라는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표지로 실었다. 두 달 뒤인 8월 캐나다에선 같은 프로그램이 그린 그래픽 노블(만화) ‘염소들(Goats)’이 북미 네이버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같은 달 열린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선 AI가 그린 출품작이 사람이 그린 경쟁작을 제치고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수상했다.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판을 흔들고 있다. AI와 자동화가 육체노동 직군에는 타격을 주더라도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미디어 같은 창의적 직군은 안전할 것이라던 사회적 통념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2나 미드저니 같은 AI 이미지 생성 플랫폼은 올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그 인기는 이미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다. 달리2는 벌써 150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매일 200만개 이상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고, 미드저니의 공식 디스코드 서버에 등록한 회원 수는 300만명이 넘는다. 뉴욕타임스는 “불과 몇 달 전 등장한 달리2와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AI 이미지 생성) 소프트웨어가 영화 제작자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크리에이티브 전문가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상제작·작곡·작문도 AI 시대
예술 영역에서 AI의 활약은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들은 한발 더 나아가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메타(페이스북 모기업)는 지난 9월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만들어주는 기술 ‘메이크 어 비디오(Make-A-Video)’ 기술을 공개했다. ‘초상화를 그리는 테디베어’나 ‘폭우 속을 걷는 젊은 부부’ 같은 텍스트를 넣어 만든 영상들을 보여줬다. 메타는 “이 기술은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학습했다”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글 역시 최근 공개된 논문을 통해 ‘이매진 비디오’라는 이름의 동영상 제작 AI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작곡에서도 AI는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만 27세에 요절한 천재 뮤지션들을 모방한 ‘27세 클럽의 잃어버린 테이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구글의 예술 창작용 AI 마젠타를 활용해 록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흑인 솔의 낭만적인 재즈 사운드로 사랑받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은 유명 가수들이 살아있었다면 낼 법한 곡들을 부활시켰다. AI가 이들 특유의 훅과 리듬, 멜로디, 가사를 분석해 곡을 쓰고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부르는 방식이다. 곡이 공개되자 팬들은 “정말 너바나처럼 들린다” “이게 음악의 미래라면 나는 찬성한다”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글쓰기 영역에서도 AI는 빠르게 진화 중이다. 안라탄이라는 소규모 회사가 개발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노벨AI’는 이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다음에 나올 문장을 예측해 출력한다. 가령, ‘나는 동굴로 들어간다’고 입력하면 AI가 ‘동굴에서 박쥐가 튀어나왔다. 그 뒤로 보물이 보인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써나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의 ‘홀로 AI’ ‘AI 노벨리스트’ ‘던전 AI’ 등 다양한 AI 소설 플랫폼들도 이미 출시돼 있다. 국내에선 소설가 김태연 작가가 대표로 있는 AI 스타트업 다품다가 ‘비람풍’이란 이름의 AI 소설가를 개발했고, 지난해 8월 출간된 장편 소설 ‘지금부터의 세계’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렸다. 김 작가가 주제와 인물·이야기 등 전체적인 구성을 짜고 비람풍이 그에 맞춰 세부적인 이야기를 채우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
◇불거지는 저작권 침해 문제
하지만 AI 창작물이 상업화 단계까지 이르려면 넘어야 할 벽이 있다. 바로 저작권 문제다. AI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결국 그 전에 만들어진 수백만~수십억개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학습한 결과다. 그래서 AI 창작물을 통한 수익 활동은 기존 예술가나 콘텐츠 제작자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의 대표 이미지 판매 서비스 기업 게티이미지도 지난 9월 “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의 업로드와 판매를 금지한다”는 성명을 내면서 저작권 침해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크레이그 피터스 게티이미지 CEO(최고경영자)는 “일부 기업과 조직, 개인이 무모하게 행동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며 “AI 예술품을 판매하기 위해 경쟁하는 회사들은 불법을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게티이미지의 최대 경쟁사 셔터스톡은 최근 오픈AI와 손잡고 달리로 생성한 이미지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해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용자들이 셔터스톡의 이미지 자료와 달리를 활용해 스스로 AI 그림을 만들고 활용하게끔 해주는 유료 서비스를 앞으로 몇 개월 안에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AI 창작 혁신을 막을 수 없으며 제도권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폴 헤네시 셔터스톡 CEO는 “혁신을 주도하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윤리적 관행에 기반을 두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큰 책임”이라며 AI가 작품 생성 시 활용한 원본 이미지 제작자들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저작권 침해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여러 우여곡절에도 결국 AI 창작물이 예술의 한 분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19세기 기술혁명 과정에서 등장한 사진이 기술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다. 케임브리지대학의 AI 윤리학자인 헨리 셰블린 박사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예술가는 죽었고, AI가 그들을 죽였다”면서도 “역사와 예술계는 늘 예술의 개념을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으로 확장하려는 사람들 편에 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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