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왜 집회 · 시위에 그 많은 경찰력을 투입해야 하나

조기호 기자 2022. 11. 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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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민 생명 안전에 더 집중해야


10월의 마지막 주말 일어난 이태원 참사로 대한민국은 비통에 잠겨 있습니다.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와중에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정부 시스템 어디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작동을 안 했는지 원인 규명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에 정쟁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 논리가 아닌 진짜 원인을 찾아내서 정밀 수술에 들어가야 또다시 끔찍한 일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이태원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또 사람이 너무 없었습니다. 앞쪽의 '사람'은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이었고, 뒤쪽은 축제 현장의 안전을 살펴야 할 '사람', 즉 경찰관입니다. 공교롭게도 참사 당일은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진보단체 집회와 이에 맞불 집회를 연 보수단체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인 날이었고 용산 인근에서도 크고 작은 집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모두 21건의 집회 시위가 있었는데 서울경찰청 기동대만 70개 부대가 출동했다고 합니다.

한번 살펴봅시다. 21건의 집회·시위를 하겠다고 신고한 인원은 11만여 명. 기동대 한 부대가 100명 정도이니 대략 7천 명이 투입된 겁니다. 반면 이태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 인원은 10만 명이었는데 경찰은 2백여 명 투입하겠다(실제 투입된 인원은 137명)고 했습니다.

이를 놓고 현재까지 진행 중인 논의는 '반정부 집회·시위에는 그렇게 많은 경찰력을 투입하면서 왜 이태원에는 턱없이 부족했느냐'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지적해야 할 사안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정된 재화(경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를 따져보는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이번 참사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부족한 경찰 인원을 충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경찰력 투입 차이를 놓고 한덕수 총리는 "이념적인 차이가 없다면 위험이 없다고 봤다"고 했습니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식 속에는 모두 '집회 시위에는 경찰력을 지금과 같은 규모로 투입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언제까지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이 띠를 만들어 서 있어야 할까요. 언제까지 차벽을 세워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게 철통 경비를 서야 하는 걸까요. 이태원 참사와 관련 뉴욕타임즈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 집회들은 시위자보다 출동한 경찰이 더 많은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번 참사 현장은 대조적이었다"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집회·시위 문화가 일상적인 프랑스에서는 우리 기동대처럼 공화국안전수비대가 있습니다.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욕하는 소리가 과거 청와대로 지금의 용산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게 막아서고, 집회·시위 참가자와 일반 시민을 분리하는 게 목적인 듯 보입니다. 프랑스는 수비대가 참가자와 시민들을 통제하지 않고 안전을 우선하는 쪽으로 관리한다고 합니다. 경찰국가인 미국 역시 참가자들이 얼굴에 탈을 쓰고 백악관 앞까지 행진해도 불법, 폭력이 없는 한 최소 인원으로 집회·시위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이제 인식을 전환해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집회·시위 참가자 0000명=경찰 기동대 00개 투입'이라는 공식을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필요 최소한의 경찰력을 설계하는 데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온 경찰력을 정말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업무에 쏟아야 합니다. 아직도 우범지대가 넘쳐납니다. 촌각을 다투는 112 신고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합니다. 기동대에서 줄어든 경찰력을 지구대 보강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지점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합법적인 선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를 누리는 시민의식 역시 따라가 줘야 할 겁니다.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조기호 기자cjk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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