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전 이태원 주변에 대기했던 경찰기동대 60~70명 투입 안 돼"

장연제 기자 2022. 11. 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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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역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당일 저녁, 현장 인근에서 경찰 기동대가 대기 중이었지만 투입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늘(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2022년 10월 29일 경력 운용 계획'에 따르면 참사 당일 경찰은 용산 전쟁기념관 인근 집회 대응을 위해 서울청 소속 기동대 3개 부대를 배치하고, 야간 대기조로 기동대 1개 부대를 배치하기로 계획했습니다.

당시 용산 지역에서는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4개 단체 집회·시위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초 용산 지역 집회 대응에 배치됐던 서울청 소속 기동대 3개 부대는 광화문 집회 대응에 동원됐고, 대신 경기남부청 소속 기동대 3개 부대가 투입돼 저녁 8시까지 용산 지역 집회에 대응했습니다.

이후에는 야간조로 편성된 서울청 기동개 1개 부대가 광화문 집회 대응을 마치고 용산 지역 녹사평역과 삼각지역 주변에서 대기 근무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통 1개 기동대는 60~70명 규모로 구성되는데, 당일 저녁 야간조로 대기했던 기동대 역시 그 정도 규모라고 이 의원실은 설명했습니다.

참사 당일 저녁 6시 34분부터 사고 발생 전까지 이태원역 주변 압사 우려 신고가 112에 여럿 접수됐으나, 정작 현장 바로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기동대 투입은 이뤄지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 배치할 경찰 경비 병력이 부족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장관은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참사 당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 경비 병력 상당수가 광화문 쪽으로 배치돼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참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서초구에는 집회·시위가 없었음에도 기동대 2개 부대가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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