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리멤버' 이일형 감독, 900만 흥행 뒤로 하고 만든 특별한 복수극

김지혜 2022. 11. 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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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검사외전'(2016)으로 970만 흥행에 성공했던 이일형 감독은 두 번째 영화 '리멤버'에서 '친일파 척결'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꺼내 들었다.

'리멤버'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이성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남주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2015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연의 영화 '리멤버:기억의 살인자'(감독 아톰 에고이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원작의 홀로코스트 설정을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에 대입했고, '친일파 청산'이라는 누구도 쉽사리 꺼내지 않은 화두를 던졌다.

역사의 그늘이자 미제인 화두를 대중 영화의 소재로 끌고 온 건 쉽지 않은 도전이다. '암살'(2015)과 '밀정'(2016)이라는 영화가 존재하지만 이는 모두 시대극이었다.

현대극 그것도 동시대의 이야기로 이 소재를 풀어내는 건 감독의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건 공감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중 영화의 주 고객층인 20~30대에게 옛날 이야기 혹은 고루한 소재라고 평가절하 당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오랜기간 영화를 준비하며 대중적인 접점을 찾아냈다.

이일형 감독은 이야기의 볼륨을 키워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는 대신 개인의 통렬한 복수극에 촛점을 맞추면서 주제의식을 강화했다. 데뷔작이 '모로 가도 재밌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면, 두 번째 영화는 재미와 동시에 의미까지 획득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Q. '검사외전' 이후 무려 6년 만의 신작이다.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나?

A. 한동안은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첫 영화가 흥행도 되고 이슈도 됐지만, 개인적으론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았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어떤 상황인지 인지도 안되고 (홍보 기간엔) 그저 하라는 대로 했던 것 같다. 상영을 마무리하고는 차기작을 구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리멤버:기억의 살인자'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하고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촬영은 2년 전쯤 마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늦어지게 됐다.

Q. 영화의 원작인 '리멤버:기억의 살인자'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A. 쉴 때 우연찮게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원작은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할아버지가 가해자를 찾아가는 로드무비다. 영화가 되게 재밌었다. 역사적 배경은 달라도 한국에 대입되는 게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제작사인 월광에 이야기를 하고 리메이크에 착수했다.

Q. 리메이크는 각색에서 성패가 갈린다. 어떤 부분에 큰 변화를 두고자 했나?

A. 원작은 뭐랄까.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에 가까웠다. 어쨌든 나는 대중 영화감독이고,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 상업적으로 풀까' 이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친일파 척결'이라는 소재가 올드하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정반대로 모두가 아는 이야기니까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관객이 다 안다는 장점도 있었다. 대한민국 현재의 시점에서 개인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시대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또한 복수극이라는 테마가 주는 강한 힘이 있어서 장르적으로도 잘 풀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은 한 명의 배우가 쭉 끌고 가는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새로운 캐릭터인 인규(남주혁)를 만들어 버디무비로 변화를 줬다.

Q. 필주가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 캐릭터들을 만들 때 특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A. 재벌, 학자, 사업가 등 필주(이성민)가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의 여러 포지션이 등장한다. 그 당시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인 나도 관객과 비슷한 정도의 역사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 선에서 인물들을 세팅하면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Q. 각색이나 연출에 있어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A.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각본을 거의 다시 쓰는 수준이었다. 원작은 주인공의 살인이 등장하지 않고, 심리적인 묘사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명백하게 복수극을 테마로 가져가고 싶었다. 가장 고민했던 건 '모두가 알지만 다소 올드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밌게 들려줄 수 있을까'였다. 또한 두 시간의 러닝타임에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큰 고민이었다. 두 요소 모두 연출에서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50대의 이성민이 80대 노인 분장을 하고 필주를 연기했다. 매 회차 분장 시간에만 3시간을 소요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고 들었다. 이성민이어야 했던 이유도 궁금하다.

A. 동년배 배우를 캐스팅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촬영이 격하고 타이트하다. 액션 장면도 나오기 때문에 그것도 고려해야 했다. 물론 분장을 선택했기 때문에 배우 본인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감독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이성민 배우의 연기야 흠잡을 데 없지 않나. 분장은 그저 "열심히 하시라"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 본인이 잘 이겨내시더라.

Q. 원작과 확연하게 다른 지점이 인규의 등장이다. 현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자, 관객의 눈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남주혁이 청춘의 표상을 잘 소화해줬다.

A.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보고 캐스팅했다. 극안에서 인규(남주혁)가 하는 일이 정말 많다. 필주가 어떤 행동을 하면 일일이 리액션을 해야 하고, 감정 변화도 많은 편이다. 인규가 무조건 필주의 선택과 행동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갈등하고, 싸우고, 공감하고, 교감하고 이런 과정들을 거친다. 인규가 필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곧 관객과 소통하는 지점이 된다. 그런 역할을 남주혁 배우가 너무 훌륭히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자(不子) 뻘인 두 배우의 호흡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Q. 복수극의 쾌감도 상당하지만, 카액션으로 속도감이나 볼거리를 강화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양현민 배우의 활용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숨통을 틔워준 느낌이 들더라.

A. 80대 노인인 필주가 주인공인 영화기에 일상에서의 그의 행동은 대체로 느릿느릿하다. 그런 그가 차를 탈 때만큼은 박진감이 살아나는 것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그가 빨간색 포르쉐를 타는 이유도 있어야 하니까. 카메라의 컷트도 필주가 걸어 다닐 때는 느릿느릿하지만 차를 탈 때만큼은 빠르게 보여주려고 했다. 양현민 배우의 활약은 영화가 내내 심각하게 진행되는데 그가 등장할때만큼은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웃기를 바랐다.

Q. '친일파 척결'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 표현과 메시지에 있어서 에둘러 가지 않는 뚝심이 인상적이다.

A. 만약 '암살'이나 '밀정'처럼 시대극이었다면 다르게 했겠지만, 이건 현대극이지 않나. 또한 이 영화는 '개인의 복수'에 초첨을 맞추고 있다. 원작과 달리 복수극으로 테마를 잡으면서 장르적으로는 '존윅', '테이큰' 처럼 주인공의 행보를 다루고 싶었다. 그 영화 속 주인공들의 행위는 주저함이나 멈춤이 없지 않나. 보는 사람에 따라 '우직하다' 혹은 '둔탁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과정과 행위를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것처럼 쭉 펼쳐내고 싶었다.

Q. 필주와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과거 장면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찍었나?

A. 짧게 짧게 나오는데 필주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주는 장면들이다. 이 영화는 쭉 내달리다가 과거신이 나오면 정지화면 처럼 멈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슬프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화면 색감이나 분위기 조성, 연기 모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연출했다.

Q. 영화 제목을 원제와 똑같이 했다. 주목도가 높은 제목은 아니라 고민이 좀 됐을 것 같다.

A. 그렇다. 옛날 멜로 영화 같다는 의견이 많아서 제목에 관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리멤버' 만한 게 없더라. 영화의 주제와 가장 닿아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게 '기억'이니까.

Q. 첫 번째 영화는 오락성으로 무장한 버디무비였고, 두 번째 영화는 메시지가 돋보이는 복수극이다. 두 영화의 온도와 색깔이 사뭇 다르다. 궁극적으로 어떤 영화를 지향하는지 궁금하다.

A. 어떤 감독도 모든 장르를 다 잘 찍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야기에 따라 장르나 연출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난 영화가 그 영화만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길을 터주는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 길을 잘 따라오게 해주는 것도 감독의 일이다. 일단 관객이 영화관에 머무는 두 시간만큼은 재밌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그게 영화적 쾌감이든, 지적 유희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영화관을 나서는 길에 잠깐 영화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Q.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이 일을 한지도 20년이 넘었다. 어떻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A.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하긴 했는데,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고3때까지 문과대학 상경계열과에 입학해 고시 공부를 하려고 생각했다. 친구 중에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 녀석이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학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자긴 꿈이 영화감독이라고 하더라. 그때 내가 "야, 어떻게 그런 꿈을 꾸냐. 영화감독 예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건데"라고 반응했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면 되지. 그러려고 대학이 있고, 관련 과가 있는거 아니냐"고 하더라.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국내에 어떤 영화 관련 대학이 있고 과가 있는지를 찾아봤다. 중앙대학교에 연극과와 영화과가 분리돼있더라. 또 영화과라고 해도 실기 없이 수능만 보면 되더라. 그래서 대학엘 갔다. 재밌는 건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한 그 친구는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감독 데뷔를 못하니까 그 친구가 미안해 했다.'검사외전'이 잘 됐을때 누구보다 기뻐해 줬다.

Q.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장면은 '키즈 리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결국 그 친구와 운명이 바뀐 것이 흥미롭다. 아마도 친구가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친구일 거란 생각이 든다. '리멤버'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A. 이 영화의 이야기와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두 시간 동안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부분에선 가볍게, 어떤 부분에선 진지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특별하게 메시지를 강요하려고 하진 않았다. 편하게, 즐겁게, 영화를 봐주셨으면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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