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칼럼] 정치가 실패하고 있다
이태원 사고 이후 첫 조사가 나왔다. 11월 첫 주의 전국지표조사(NBS)는 10월의 마지막 날부터 11월 2일까지 조사가 이뤄졌다. 이태원 이후 첫 3일 동안의 조사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를 보면 긍정평가 31%, 부정평가 60%로 같은 조사의 2주 전과 같다. '지지율 30% vs. 60%'의 흐름 속에 있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신뢰도도 마찬가지다. "신뢰한다 35%, 신뢰하지 않는다 60%"로 직전 조사와 비교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2% 포인트 상승하고, 신뢰한다가 1% 포인트 하락했다. 역시 '30% vs. 60%'의 틀 안이다. 지지도 역시 이태원 사고에 앞선 조사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NBS의 11월 첫 주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 33%, 민주당 31%로 양당 모두 1~2%포인트 하락했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던 무당파도 계속해서 유권자 10명 중 3명에 가까운 흐름도 이어진다.
이태원 영향이 '아직' 여론에 반영되지 않았다. '사고'에서 '참사'로, '사망자'에서 '희생자'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다. 주말 전후와 다음 주의 여론조사들이 주목되는 이유다.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던 경찰청장이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지만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면서 "국민 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을 통감한다"고 한 이후 여론은 변한다.
이태원 사고 이후 첫 주의 정치는 저급했다. '사고 vs. 참사', '사망자 vs. 희생자'라는 용어 싸움의 정치에 머물렀다. 정치적 책임은 외면하고 행정적 면책의 구실과 희생양 찾기에 나선 모양새다. 권력과 관료제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다. 사전에 정해진 법률과 규정 등에 따라 작동하는 게 관료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효율성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근대 이후 모든 나라에서 관료제가 채택된 이유다.
권력과 관료제는 기본적으로 소수의 응집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권력과 관료제는 폐쇄적이며 배타적 성격의 집단으로 변화한다. 유연성을 갖기보다는 법규 만능주의의 경직성이 높아지는 것 또한 권력과 관료제의 특성이다.
권력과 관료제는 함께 권력집단화된다. 관료제가 권력 엘리트의 지배를 위해 현실적으로 유용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면서부터다. 결국 관료제는 권력 엘리트와 함께 지배계급이 된다. 권력 집단화된 관료제는 스스로를 보호하며 유지하는 동시에 확장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권력과 관료제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다. 권력과 관료제가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국민에 군림하는 권력집단이 된다. 이렇게 되면 권력과 관료제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나 느낌과는 멀어지게 된다.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경찰인력 배치 미흡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을 정리하고 수사 결과도 나온 후 제 입장을 말하는 게 순서"라거나 "영혼 없는 사과보다는 정확히 어떤 사전준비를 했고 실제로 잘 시행이 됐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언급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관료(제)의 법규 만능주의는 법규가 만들어진 당초의 목적과 동기를 잊고 법규 집행의 최소한에 머문다는 문제로 현실화 된다. 정부나 지자체가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안전관리 매뉴얼이 없다"거나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 핼러윈은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발뺌을 하는 이유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지고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요한 역할은 권력과 관료제가 유능하게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권력과 관료제의 경직되고 폐쇄적이며 법규 만능주의의 폐해 가능성을 미리 통제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는 권력과 관료제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각각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며 공유와 협업을 통해 국민 삶의 보호와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태원'은 정치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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