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혹” 입 안 15cm 종양 뗐다… 한국서 새 인생 선물받아

김경은 기자 2022. 11. 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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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20대 청년 플란지씨, 15cm 넘는 얼굴 혹 10년간 방치
열악한 현지 의료 환경 탓, 친구들 따돌림에 다니던 학교도 중퇴
선교 활동하던 이재훈 의사, 서울아산병원에 지원 요청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 “영양상태 안 좋아 염려 컸지만 8시간 대수술 성공적”
한국을 찾아 얼굴 크기만한 종양을 성공적으로 치료받은 플란지씨(왼쪽)에게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귀국을 앞두고 덕담을 건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입안에 생긴 얼굴 크기(15cm 이상)만한 거대 종양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동네에선 따돌림까지 당했다. 그랬던 마다가스카르의 한 청년이 한국을 찾아 새로운 삶을 얻었다.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은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입안에 사람 얼굴 크기의 종양을 방치해온 플란지(Flangie·22)씨의 거대세포육아종을 없애고 아래턱 재건과 입술 주변 연조직 성형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3일 밝혔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쪽에 위치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나라다.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 중 하나이고, 그나마도 오지는 전기조차 안 들어와 전 세계적 팬데믹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잘 모를 만큼 외부와 단절돼 있다.

여덟 살 때였다. 플란지씨는 어금니 쪽에 통증이 있어 어머니 도움을 받아 치아를 뽑았다. 그때 발치가 잘못된 탓일까. 어금니 쪽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처에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대로 10여 년간 방치했다.

처음엔 작았던 염증은 거대세포육아종으로 진행됐다. 점차 커졌다. 거대세포육아종은 100만명당 한 명에게 발병한다고 알려진 희귀 질환이다. 초기엔 약물로도 쉽게 치료할 수 있지만, 플란지씨의 경우 오랜 기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종양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거대해졌다. 그의 종양은 거대세포육아종 중에서도 심각하게 크기가 컸다.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라며 따돌림을 받던 아프리카 남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오지의 청년 플란지씨의 수술 전(왼쪽, 올해 5월) 모습과 수술 후(오른쪽) 모습. /서울아산병원

얼굴만한 종양이 입안에 생긴 탓에 플란지씨는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대화하는 것도 점차 힘들어졌다. 종양을 만지거나 잘못 부딪히면 출혈이 자주 발생해 일상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친구들은 겉으로도 드러나는 거대 종양 때문에 그를 ‘징그러운 혹이 달린 아이’ ‘귀신 들린 아이’라고 따돌렸다. 결국 플란지씨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그가 사는 마을은 마다가스카르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도 약 2000km 떨어진 암바브알라(Ambavala)다. 마을까지 이어지는 차도가 없어 이틀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다. 마을엔 전기가 통하지 않아 불을 피워 생활한다. 이렇다 할 의료기관은 물론 마을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다. 간호사만 한 명 있다.

마을에서 3시간을 걸어나가면 병원이 하나 있지만, 거기서도 한 명의 의사가 간단한 진료만 해줄 뿐이다. 플란지씨는 희망을 갖고 그 병원을 찾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들어야 했다.

그렇게 10여년간 종양을 방치하던 중 지난해 초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의사 이재훈씨 눈에 플란지씨가 우연히 띄었다. 이씨는 플란지씨의 종양을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치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술이 가능한 한국의 의료기관을 수소문하던 중 서울아산병원이 이에 흔쾌히 응했다. 이씨는 2018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선정한 아산상 의료봉사상 수상자로 서울아산병원과 인연이 있었다.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았던 플란지씨는 한국에 가기 위해 약 1년간 입국 절차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1일 약 20시간 비행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보름여 뒤인 지난 9월 16일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은 치과·이비인후과와 협진해 여덟 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했다. 길이만 15cm, 무게는 무려 810g에 달하는 플란지씨의 거대육아세포종이 마침내 제거됐다. 종양 탓에 제 기능을 못하던 아래턱은 종아리뼈를 이용해 재건했다. 종양 때문에 늘어나 있던 입과 입술도 정상적인 크기로 교정했다.

플란지씨의 영양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아 의료진은 그가 장시간의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염려했다. 하지만 플란지씨는 이를 무사히 이겨냈다. 한결 가벼워진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되찾아 오는 5일 마다가스카르로 귀국을 앞두고 있다.

플란지씨(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관련 의료진 등과 함께 귀국을 앞두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플란지씨의 치료 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플란지씨는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내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어주시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 “원래는 평생 혹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뿐이었는데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꿈이 생겼다”며 “선교사가 돼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다년간 안면기형 치료 경험으로 노하우를 쌓아왔지만, 플란지의 경우는 영양결핍 상태가 심각해 전신마취를 잘 견딜지부터가 걱정이었다. 종양도 크기가 생각보다 거대해 염려가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플란지가 잘 버텨줘 건강하게 퇴원하는 걸 보니 다행이고, 안면기형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극복해 앞으로는 자신감과 미소로 가득한 인생을 그려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5월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20여년간 중이염을 방치한 인도네시아의 난청 환자 베타 옥타비아(Betta Octavia·31)씨를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팀이 성공적으로 치료한 바 있다.

한국을 찾아 얼굴 크기만 한 종양을 성공적으로 치료받은 플란지씨(왼쪽)에게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귀국을 앞두고 덕담을 건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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