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반도체 위기, 메모리 경쟁력에 시스템반도체 보강하면 충분히 극복”

장인철 2022. 11.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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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의 관찰] 김양팽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전문연구원

"반도체 위기론, 당장의 실적보다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지형 격변이 본질"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 이른바 'K반도체' 위기론이 만만찮다. 위기의 실제성과 관계없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어닝쇼크와 반도체 수출 격감에 따른 수출 감소 등 불안한 지표들도 위기론을 키우는 양상이다.

하지만 경기순환 요인이나 글로벌 불황에 따른 실적과 지표의 위축은 위기의 진짜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다수 전문가들은 지금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과 미중 반도체 전쟁,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른 수요구조 변화 등을 K반도체의 성쇠를 가를 변수로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전문가인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건 맞지만 위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며 "글로벌 반도체 수요는 앞으로도 크게 증가할 것이므로 K반도체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자신한다. 김 연구원의 위기 진단과 전망을 듣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일보와의 '논담'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어닝쇼크는 반도체 위기론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라며 "본질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형의 격변"이라고 말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최근 K반도체 위기론이 이전보다 더 자주, 더 광범위하게 대두되는 양상이다. 위기론의 내용은 무엇인가.

“요즘 위기론이라는 게 사실은 우리 반도체 산업에 닥친 만만찮은 도전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차원이라고 본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이라든지 매출 등이 줄어드는 게 당장의 위기론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대한 도전과 지금까지 구축된 관련 산업구조가 흔들리는 게 위기론의 내용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흔들고 있는 것과 중국의 ‘무한 도전’이 위기감을 자극한 가장 큰 요인들이다. 중국의 무한 도전이라는 건 일반적 시장논리라면 기업이 수익을 발생시키지 못하면 그 기업에 대한 투자를 멈추고, 그 산업부문에서 철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 반도체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면서 무조건 전진을 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그런 상황과 과거 메모리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의 최근 권토중래 움직임 등이 K반도체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다.”


"반도체의 존재적 가치가 이전과 달라지고 경쟁이 격화한 것도 위기 배경"

-위기론이 증폭되는 배경은.

“국내적으론 당장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0.3%, 31.4% 감소했다. 수치로만 보면 심각하다고 할 만하다. 지난 7월 2.1%까지 떨어진 반도체 수출도 8월엔 -7.8%, 9월 -5.7%로 감소세가 나타나더니, 지난 10월엔 무려 -17.4%로 감소폭을 키웠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좋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은 반도체의 존재적 가치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데 따른 것이다. 과거엔 그저 전자·전기제품의 부품이고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미중 반도체전쟁 과정에서 반도체가 국가 안보까지 좌우할 미래 첨단산업의 핵심요소라는 인식이 각국에 퍼졌다. 그게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앞다퉈 기술개발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기존 체제에서 나름 세계 최고 경쟁력을 축적한 우리로서는 이런 격변이 위기 요인으로 닥친 셈이다.”

-메모리반도체 불황의 원인과 정도는.

“지금 반도체 불황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개인용 전기·전자 제품 수요가 감소했고, 그로 인해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30~40%까지 증가하고, 단가가 3달러 이하까지 하락하는 국면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메모리반도체 불황은 수요 기업이 재고를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회복세로 전환된다. 하지만 이번엔 수요 감소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까지 겹쳐 수요 감소가 더 크고 길게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불황 지속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업계의 분석이 있다.

다만 지금 불황이 그 자체로 위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30%대, 60%대의 분기 이익 격감을 겪고 있다지만, 코로나19 이래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호황을 누렸던 지난 2년여 동안엔 연평균 약 70%에 이를 정도의 이익 폭증세를 탔다. 요컨대 코로나 특수에 따른 직전 실적이 워낙 과열됐기 때문에 최근 감소세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착시효과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 장기 경기흐름은 여전히 우상향하는 슈퍼사이클을 타고 있다고 본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규모 추이(상단 그래프)를 보면 매출 증가율은 2021년 하반기를 고비로 하락하고 있지만, 매출액 자체를 나타내는 장기 그래프는 우상향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감률 추이(하단 그래프)엔 최근 급감하고 있는 수출 증가율 상황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은 아직 굳건, 마이크론이나 일본 재도전엔 유의해야"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위기론의 한 축이다. 어떤 상황인가.

“우리나라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하고 있으나, 메모리반도체 생산은 여전히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최근 중국 기업이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시장 경쟁력은 아직 미흡하다고 본다.

메모리반도체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 기업은 미국 마이크론이지만 첨단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아직 양산체제는 약하다. 사실 수율 등의 문제로 양산이 되지 않으면 시장 진입이 어렵다. 나아가 안정적인 생산이 이루어지고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까지 가려면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고객들의 로열티를 견고하게 구축한 상태라,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아직은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중국의 무한 도전이 계속되고 있는 점, 일본이 미국 대만 등과의 협력을 통해 70~80년대 메모리 세계 1위 국가에 올랐던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자 국가적 노력을 벌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우리로서는 초격차 유지가 절실하다.”

-시스템반도체 부진이 K반도체의 취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시스템반도체가 왜 중요하고,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에서 뒤처진 원인은 무엇인가.

“시스템반도체 부진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이라고 하지만, 반도체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골고루 갖춘 나라는 없다. 시스템반도체가 성공한 나라로 미국을 꼽지만 미국도 팹리스만 성공했고,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는 취약하다. 대만도 파운드리는 세계 최강국이지만 메모리반도체는 취약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는 30% 이하이고 나머지는 시스템반도체다. 그런데 가격으론 시스템반도체가 더 비싸다. 또한 메모리반도체는 기능이 데이터 저장으로 한정되어 있으나, 시스템반도체는 용도별로 계속 새로운 제품이 개발될 것이며, 향후 AI 반도체 시장 등을 감안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지금보다도 훨씬 커질 것이다. 미래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가 강조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하게 됐다. 한정적 자원 때문에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함께 성장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생산은 포기하고 설계, 즉 팹리스만 발달한 미국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스템반도체 전략은 메모리 분야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메모리반도체의 시장 변동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팹리스를 선도로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김양팽 연구원은 장인철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고, 시스템반도체 보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릴 핵심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원 인턴기자

"시스템반도체 시장 전망 밝아 K반도체도 팹리스 육성과 연구·생산 서둘러야"

-미국의 ‘반도체와 과학법’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분업 및 경쟁 구도와 우리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반도체와 과학법’은 미·중 기술패권경쟁 승리를 위한 미국의 국가 종합 과학기술 전략을 법제화한 것이다. 총 2,800억 달러(약 365조 원) 규모의 연구개발 예산과 반도체 산업 보조금을 편성했다. 이 법체계 속에 포함된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처럼, 반도체에서도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기업에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대신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규정을 통해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를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자국 내에 설계부터 후공정에 이르는 반도체 일관 생산체계를 구축해 완전한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는 설계, 생산, 장비 제조, 부품·소재 등에 걸쳐 나라별로 분업화한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국제분업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각국별로 확보한 경쟁우위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세계 반도체 시장의 큰손인 중국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해서 우리로서는 반갑지 않은 대목이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은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많이 주는 곳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 수요 증가세를 감안할 때, 우리 반도체 기업 설비투자의 일부가 미국으로 가더라도 국내 설비투자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반도체 생산 및 고용 기반의 급격한 약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이 불가피하다지만, 중국 시장 상실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다. 중국과의 윈윈 방안을 제시한다면.

“요즘 ‘한미 반도체 동맹’이니, ‘칩4 동맹’이니 하는 반도체 산업 관련 국가 간 ‘동맹’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먼저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를 느낀다. 단적으로 말하면, 동맹은 아니다. 여기서 동맹이라는 건 그저 ‘중국을 제외한 협력체제’라는 의미일 뿐이고, 그나마도 협력과 경쟁이 뒤섞인 묘한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중국과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한 건 맞다. 향후 중국과의 반도체 관계는 중국이 메모리반도체 등에서 충분한 자체 기술력과 양산체제를 갖추기 이전과 이후 등 시기적으로 두 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다. 그전까지는 우리도 중국에 계속 반도체를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중국 시장을 가급적 지켜야 한다. 중국 역시 자체생산체제가 완비되기 전까지는 한국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적정한 협력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그 이후엔 중국도 어차피 자국 반도체를 쓰면서 한국산 반도체 비중을 줄일 것이다. 거기에 대비해 우리는 지금부터 인도 등 타 지역으로 수출시장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시스템반도체 보강 필요해도 메모리반도체 최강 경쟁력 잃지 않도록"

-K반도체 생존과 도약을 겨냥한 업계의 바람직한 대응 방향은.

“당장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여야 한다. 반도체는 진화하는 제품이다. 메모리반도체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D램의 미세화, 낸드플래시 적층화 기술 등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를 경쟁국보다 먼저 개발해야 한다.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선점을 위한 기능 진화 및 소재 변화 등도 모색해야 한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생산이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설계인 팹리스는 기회가 상당히 많은 분야이다. 신기능 제품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에 통용되는 혁신 제품을 개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가 팹리스 산업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팹리스가 육성되려면 당연히 수요산업과의 긴밀한 매칭이 절실하다. 국내 수요산업은 물론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할 필요가 크다.

파운드리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대기업이 파운드리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지원에 인색하다.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제조장비와 소재 중소기업도 기술력 강화가 필요하다. 우리 제조장비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동시 납품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압도적인 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 특히, 네덜란드의 ASML 노광기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다. 제조장비 기업의 기술 개발에 산학연 공동 투자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반도체 산업 지원책과 실효성을 평가한다면.

“반도체 산업 지원정책은 사실 더 이상 새로운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등 이미 나온 법안 등이 조속히 처리돼 설비투자, 연구개발 세액공제 등 지원책이 제대로 시행되는 게 시급하다. 용인 SK하이닉스 공장 건설이 지연되는 상황을 보면 답답하다. 최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입지 규제 등을 언급하며 국가산단 지정 방침을 내놨는데, 그런 거라도 조속히 추진되면 좋겠다. 미국은 자국에 들어오는 설비투자의 25%를 세액공제 해준다. 반면 우리는 지난 8월에 마련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법’에서조차 대기업의 경우 20% 공제가 고작이다. 설비투자 행정처리는 SK하이닉스 용인공장 건설이 4년 가까이 표류한 것과 비교해, 마이크론의 미국 뉴욕주 생산공장은 용인 SK하이닉스 공장보다 2년 늦게 시작했음에도 양산은 2년 앞설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반도체 투자 유인책은 경쟁국에 분명히 밀리고 있다.”


"반도체 설비투자 지원, 법제보다는 적극 현장행정으로 실효성 갖춰야"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방안은.

“세계 반도체 산업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다. 최근 메모리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은 연평균 7~8%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규 교육 과정에 반도체 학과를 늘리는 것은 인력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수도권 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반도체학과를 선택하는 이유는 결국 취업이 잘되고 수입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력이 양성되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지속해서 성장하고 반도체 기업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수인력 양성을 위해서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다만 반도체 인력 부족은 세계적 현상인 만큼, 우리가 양성한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강구될 필요가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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