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인간 진보의 시대'는 끝났다···생물·자연과 공존하라
제러미 리프킨 지음, 민음사 펴냄
화석연료 활용 200년간 자연 약탈
산업·녹색혁명으로 발전 이뤘지만
지구 황폐화·기후변화 위기 불러
인간종도 다른 종처럼 멸종할 수도
환경책임주의 등으로 사회 대전환
새 문명 서사인 회복력 시대로 가야
“우리와 함께 이 행성에 사는 다른 모든 생물 종은 인간 종이 우리보다 앞서 화석 목록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생물 종처럼 사라져 준다면 훨씬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가.”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신간 ‘회복력 시대’에서 제시한 해답은 ‘회복력(resilience)’이다. 그는 인간 종이 지난 200년간 화석 연료를 이용해 자연에 군림하던 이른바 ‘진보의 시대’는 끝났다며 인류 문명의 위기를 구원할 키워드로 ‘회복력 시대’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근대 철학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 이후 서구는 우주는 기계적 법칙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하며 인간 역시 스스로 영속하는 창조물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이 같은 계몽주의 세례를 받은 경제학자들에게 천연자원을 활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면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였다. 진보의 시대에 인간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천연자원을 수탈해 상품화하고 소비하는데 몰입했다. 정치와 경제의 주요 역할은 자연을 재산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질의 없는 양의 시대였다.”
결국 인간 종은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을 거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등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는 물·공기·토지·생물 등 한정된 ‘자연 자본’을 약탈한 결과에 불과했다. 산업화를 거치며 전 세계 표토(식물이 흡수하는 영양분·수분 대부분이 저장된 7~25㎝ 범위의 토심) 3분의 1이 황폐해졌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60년 뒤면 인류를 먹여살릴 수 있는 표토가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지구 산소 감소와 해양 온도 상승으로 2070년이면 지구 면적의 19%가 인간이 살 수 없는 뜨거운 지역으로 변할 것으로 예측한다.
인간 종은 자연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자만하다가 홍수·가뭄·허리케인·산불·전염병 등 대자연의 역습 앞에 대책도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가 우리를 지구상의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이끌고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리프킨은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기후는 따뜻해지고 있으며 지구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며 “이제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자연계에 적응해야 하는 굴욕적인 운명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야를 인간 사회로 좁히더라도 ‘진보의 시대’는 종착역에 이른 상황이다. 시장 자본주의, 과학과 기술에 기초해 인류의 부와 수명을 늘린다는 핵심 전제가 무너진 탓이다. 코로나 팬더믹 사태나 공급망 붕괴, 반복되는 경제위기, 소득 격차 심화, 극우파나 포퓰리스트 부상과 민주주의 후퇴 등은 자본주의 붕괴의 신호탄이다.
저자는 “우리의 거대한 두뇌는 해악인 동시에 축복이었다”며 “이제 우리는 어떤 인간도 혼자만의 섬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자율적 행위자도 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다른 모든 생명체와 지구 권역의 역학에 의존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죽어가는 진보의 시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문명의 서사인 ‘회복력 시대’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우선 리프킨은 자연을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인간 종 역시 생명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실제 우리 몸에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원생생물, 고세균, 균류 등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인체 내부에서 인간의 세포 비중은 43%에 불과하고 나머지 57%는 이들 미생물들이 차지한다.
그는 진보의 시대가 효율성에 발맞춰 진행했다면 회복력 시대는 적응성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한다. 적응성은 ‘조화를 이룬다’는 동양 철학의 개념과 비슷하다. 따라서 회복력의 핵심은 본질적으로 중복성과 다양성이다. “자연을 인간 종에 적응시키기보다 인간 종을 자연에 다시 적응시키는 대전환은 자연의 비밀을 왜곡하고 지구를 우리 종의 독점적 소비를 위한 자원이자 상품으로 보는 전통적인 과학 탐구 방식의 폐기를 요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의 이행은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거대 복합기업에서 민첩한 첨단기술 기업으로 △지식재산권에서 오픈소스 지식 공유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세계화에서 세방화(glocalization·세계화와 지방화의 장점을 함께 발전시키는 것) △소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책임주의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 지수(QLI)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의 전환을 포함한 경제·사회의 전면적인 변화를 뜻한다. 특히 21세기 후반부 이후에는 인류가 회복력 시대로 더 깊이 접어들면서 산업 시대의 심장인 ‘금융자본’이 ‘생태자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 질서에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같은 대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리프킨은 인간 고유의 생명애 의식과 공감 능력을 이유로 조심스레 낙관론을 펼친다. 이미 젊은 세대는 인간 종을 넘어 다른 생명체와 연대하고 있고 환경·소비·민주주의 등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인간 종은 동료 생물들과 달리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연계를 약탈하고 망치는 종이면서 치유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회복력 시대인 오늘날 우리는 지구라는 집의 주인이 아니라 동료 생물들과 같은 처지에서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2만6000원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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