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스스로 살아 나올 길은 없다...이태원 참사, 경비 실패가 원인"

최진주 2022. 11. 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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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사키 요시테루 일본 효고현립대 명예교수  
21년 전 아카시 압사 사고 조사 등 재난 권위자
"'토끼 머리띠' 찾는 건 무의미... 시스템 문제 삼아야"
10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이태원 참사와 닮은 사고가 있다. 2001년 발생한 '일본 효고현 아카시 불꽃축제 보도교 사고'. 비좁은 보행자 전용 다리에 인파가 몰려 11명이 압사하고 247명이 다쳤다. 경찰과 아카시시 당국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재난 전문가와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가 구성돼 진상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경찰의 혼잡 상황 경비 체제가 전면 재정비됐다.

위원회에 참여했던 무로사키 요시테루(78) 일본 효고현립대 명예교수를 2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정부가) 인파 통제를 하지 못한 것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그런 인파에 휩쓸리면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비롯한 대형 재난·재해, 2002한일월드컵 같은 대형 행사 때마다 사고 예방과 수습 대책을 정부에 조언한 재난 연구 권위자이다.

-일본 언론은 이태원 참사를 보도하며 ‘군중 눈사태’라는 용어를 쓴다.

“그 용어는 21년 전 아카시 사고 조사위원회에서 처음 만든 것이다. 인파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현상과는 다르다.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간이 있을 때 어느 한 명이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밀면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한쪽 방향으로 차례로 쓰러진다. 아카시 사고와 이태원 참사 때 발생한 게 군중 눈사태로, ㎡당 10~15명이 빽빽이 들어 찬 초밀집 상태에서 일어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넘어지거나 주저앉아서 틈새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향해 쓰러지면서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쌓인다. 아카시 사고 때는 사람들의 갈비뼈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을 정도였다.”

-같은 군중 눈사태인데 희생자 수 차이가 큰 이유는 뭔가.

“아카시 사고 때는 한 곳의 틈새를 중심으로 20명 정도가 뒤엉키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교는 평평했다.) 이태원 골목은 가팔라서 위와 아래에서 각각 가해지는 힘이 강했던 데다, 사람들의 시야갸 확보되지 않아 사람들이 미는 힘이 계속 작용했다. 이 때문에 군중 눈사태를 촉발하는 틈새 공간이 연속적으로 여러 지점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초밀집 상황에서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은.

“전후좌우로 꽉 눌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히 없다. 밀집 상태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아카시 사고 때도 예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경찰 대다수가 폭주족 단속에 배치돼 있었고, 경찰 중 상당수가 불꽃놀이를 구경하느라 인파 관리에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도 인파 통제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인가.

“결과론에 불과하지만, 밀집 상태가 되지 않게 인파를 통제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참사를 막으려면 사전에 계획을 잘 짜야 한다. 불꽃놀이든, 올림픽,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면 (정부와 경찰이) 반드시 경비 계획을 짜고 모의 훈련을 해야 한다. 이번엔 그런 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에선 ‘토끼 머리띠 남자’가, 아카시에선 ‘금발 남자’가 군중 눈사태의 최초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건이 발생하면 원인을 제공한 특정인을 찾으려 하는 게 우리의 습성이다. 아카시 사고 때도 '왜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 놀러갔냐'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나 아카시 사고는 사람들이 고밀도로 운집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분노를 집중하려 하지 말고 그런 상태를 허용한 경비 시스템을 문제 삼아야 한다.”

재난 전문가인 무로사키 요시테루 일본 효고현립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인파 통제의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우선 인원 제한이다. 군중 밀집이 예상되는 곳에선 사람 수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일정 인원이 넘어가면 진입을 막아 통제한다. 둘째는 인파 속 충돌 방지다. 도로 한가운데에 경찰이 지지대 등을 잡고 서서 인파 흐름을 통제하거나, 좁은 길에서는 일방통행만 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 제공이다. 일본 경시청 ‘DJ폴리스’가 하는 것처럼 "앞이 막혀 있으니 돌아가라", "잠시도 멈춰 서 있지 말라"라는 식의 정보를 군중에게 끊임없이 줘야 한다.”

-아카시 사고 때는 제3자위원회가 구성됐는데 한국에선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외부인을 포함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공정한 조사를 위해서다. 다만 조사할 때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면 솔직한 증언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사에 임해야 한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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