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밤 무슨 일이…밝혀지는 ‘12시간 엉망진창’ 대응[이태원 핼러윈 참사]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핼로윈 참사’는 정부의 재난 대응 관리 체계가 심각하게 고장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참사 발생 전 112 신고가 무시된 것만이 아니다. 인명사고 발생 직후에라도 신속한 초동 조치가 이뤄지고 비상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1명이라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이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저녁 작성한 ‘이태원 사고 관련 상황보고서’에는 당시 이태원 현장 주변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고서는 시간대별로 경찰의 조치사항을 건조한 문체로 담고 있지만 선후관계와 상황별 조치내용을 따져보면 당일 경찰 지휘부의 대응은 엉터리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더해 그간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등에서 내놓은 설명을 취합해 시간대별로 재구성해보면 우왕좌왕하며 허둥댔던 정부 대응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드러난다.
①참사 발생부터 45분. “컨트롤타워, 아무도 몰랐다”
119 신고가 이뤄진 지난달 29일 오후 10시15분부터 45분 동안은 재난·재해 상황 발생시 컨트롤타워라고 할 만한 정부 책임자들 중 누구도 사고 발생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태원 일대를 관할하는 서울 용산경찰서장 홀로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용산서장은 서울경찰청 관내에서 일어난 대형사고를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당일 이태원에 몰려든 인파를 눈으로 보고서도 참사 규모가 클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십명이 의식을 잃어 곁에 있던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런 일이 벌어진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윤 대통령에게는 46분 만에 사고 내용이 보고됐다지만, 경찰 수장은 대통령도 알고 TV 뉴스 속보로도 중계되는 내용을 한참 뒤에야 보고받았다.
②뒷북의 연속. “그제서야 보고·보고·보고…”
정상적인 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니 지휘·지시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현장 대응은 우왕좌왕했다. 참사 발생 시각으로부터 1시간45분이 지난 30일 0시가 돼서야 ‘구급차 통행로를 확보하라’는 경찰 지시가 나왔고,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용산경찰서 전 직원을 비상소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경찰 조직은 신속하고 정확한 지시가 생명인데, 뒤늦게 인력이 들어오다 보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현장 수색과 추가 상황 발생을 막기 위한 협조 요청뿐이었다. 결국 현장에 모인 공무원들의 역할은 시신 확인과 안치 등 뒷수습에 국한됐다.
상부 보고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 행안부가 소방청으로부터 보고받은 ‘소방대응 2단계’ 발령 사실을 알리는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23시20분이었고 사고 발생 1시간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는 이 장관의 ‘공식 인지 시점’인데, 그 전에 공직에 있는 누군가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연락이 됐어도 문제, 안 됐어도 문제이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오후 11시34분 용산서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 연락 자체가 이미 늦은 것이었지만 그마저 놓친 것이다. 2분 뒤 김 청장은 ‘부재 중 전화’에 연결을 했다가 그제서야 참사를 인지했다. 그로부터 49분 뒤인 30일 오전 12시25분에야 김 청장은 현장에 도착했다. 참사 발생으로부터는 2시간1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청장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 불명으로 확인된 사람만 50명이 넘는 상황이었고, 윤 대통령이 벌써 두 차례에 걸쳐 지시를 내려둔 상황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한술 더 뜨는 지경이었다. 그는 날짜를 넘긴 0시14분, 발생 시각으로부터는 약 2시간이 흐른 뒤에야 경찰청 상황1담당관으로부터 공식 보고를 받았다. 공식 보고를 받은 지 2시간16분 뒤인 30일 오전 2시30분 경찰청 차장이 현장에 도착했고, 같은 시각 윤 청장이 주재하는 경찰청 지휘부 회의가 열렸다.
③엎질러진 물. “수습 철저” 지시만 덩그러니
이미 놓친 구조의 ‘골든타임’에 더해 보고 지체에 따른 지휘 공백까지 겹쳐 현장 대응은 ‘뒷북’에 급급하는 양상이 됐다. 용산서장은 오전 1시10분 추가로 구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 순찰을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서울청장은 경찰관들에게 이태원 일대에서 아직 영업 중인 업소의 조기 마감을 종용하라는 지시를 했다. 용산서 직원들과 용산구 인접 6개 경찰서 형사와 기동대가 투입됐지만 이미 참사는 뒷수습 국면이었다.
희생자 시신을 임시로 안치할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주변에 교통경찰이 배치된 시간이 오전 2시40분. 그로부터 44분 뒤인 3시24분에는 희생자 시신 45구가 체육관에 안치됐다. 현장 경찰들은 추가로 발견될 지 모를 사망자나 부상자를 찾기 위한 수색에 안간힘을 썼고, 유실물과 유류품들을 찾느라 총 4회에 걸쳐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시신의 신원을 찾기 위해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반에서는 희생자들의 지문을 채취했다. 또 다른 운구처인 순천향병원과 원효로 체육관에서 서울과 경기 등의 병원으로 분산 이송 조치를 한 시각은 오전 6시.
오전 10시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점검을 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참사 발생으로부터 약 12시간이 지난 때였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은 뜬눈으로 밤을 새며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지연된 보고와 전혀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인해 대형참사를 막지는 못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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