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후폭풍' 생보사 유동성 비상…당국 "규제 한시적 완화"

신찬옥, 채종원 2022. 11. 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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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해지 늘고 자금조달 비상
채권 팔며 겨우 버티는 상황
지난달에만 2조원 순매도
긴급 진화 나선 금융당국
유동성 평가기준 풀어줘

흥국생명의 영구채 조기상환권 미행사로 채권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감독당국이 보험사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일부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주기로 했다. 보험사 유동성 비율은 엄격한 규제를 받는데, 당국은 연말까지 경영실태평가(RAAS) 때 유동성 지표 평가등급을 한 단계씩 상향해주는 식으로 부담을 덜어줄 방침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3일 생명보험 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규제 완화와 추가 지원 방안을 검토·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보험사에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 매도를 가급적 자제하고 기관투자자로서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조치로 연말까지는 보험사 경영실태평가에서 유동성 지표 평가등급이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된다. 평가등급이 2등급이면 1등급으로, 5등급이면 4등급으로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유동성 자산으로 분류하는 범위도 확대한다. 현재는 만기 3개월 이하 자산만 인정하지만,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채권 등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도 한시적으로 포함해줄 방침이다. 당국이 지원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생보 업계 자금난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빅3 생보사가 연말까지 두 달간 충당해야 할 자금만 6조4000억원(업계 추정치)에 달한다. 은행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저축성 보험 해지가 늘어나는 등 돈 나갈 곳은 많은데, 자금 확충 수단인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고금리에 따른 투자 수요 저조로 꽉 막힌 상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상위사들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데 작은 보험사들은 진퇴양난 수준"이라며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려면 단기 자금을 빌려오든, 자산을 매각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생보사 23곳 중 메트라이프생명을 제외한 22곳에서 모두 '수지차'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지차란 수입보험료에서 지급보험금과 사업비 등을 뺀 금액을 말한다. 생보 업계 전체로 보면 수지차는 전년 대비 18조2000억원(3분기 기준)이나 줄었다. 수지차가 마이너스인 회사도 작년 7곳에서 16곳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유동성 자산을 평균 3개월 지급보험금으로 나눈 '유동성 비율'은 1년 새 평균 80.2%포인트 떨어졌고, 일부 회사는 '100% 미만'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채권시장 투자자였던 보험사들이 불과 두 달 만에 '판매자'로 돌아섰다. 보험사 채권 매매 동향을 보면 생보사들은 지난 8월만 해도 3조9000억원의 채권을 순매수했지만, 지난달에는 2조1000억원 규모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보험사 재무 담당 고위 관계자는 "내년 시행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를 준비하려면 장기 국채를 사야 할 시점이지만, 당장 유동성을 확보할 곳이 없다 보니 보유 채권을 내다팔면서 버텨야 하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문제는 매수자였던 보험사가 매도로 돌아서면서 작은 규모에도 채권시장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보험 업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을 통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상 기관에 '보험사'를 추가해달라고 당국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내년 7월까지 은행 18곳과 비은행 7곳 등 금융기관 25곳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생보 업계 관계자는 "RP 매매 대상 기관에 포함시키는 것이 보험 업계 유동성 확보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현재 RP 시장 규모는 보험사 물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채권시장 영향 없이 장기금리와의 연관성도 낮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는 보험사 자금 차입 목적을 제한하고 있는 감독규정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보험업법 시행령 규정상 '적정 유동성 유지'나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을 위해서만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 규정만 보면 은행에서 당좌차월을 받거나 RP 매도를 통한 자금 차입이 가능한지가 불분명하다.

[신찬옥 기자 /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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