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리 5%대까지 오른다는데…‘레고랜드 사태’에 머리 싸매는 한은
[레고랜드발 시장 경색]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정책금리를 5%대까지 올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행보도 안갯속에 휩싸였다. 한은이 이미 ‘환율 방어전’을 선포한 점을 감안하면 미국에 맞춰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려야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경착륙 위험이 불거진 채권시장이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달 금융·외환시장의 움직임이 한은의 보폭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3일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물가안정에 대한 미 연준의 강력한 의지가 재확인됐다”며 “환율, 자본유출입 등의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경우 적시에 시장안정조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 정책금리에 대한 시장 전망치가 높게는 5%대 초중반으로 상향 조정되자, 원-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한은이 본격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추가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지난달 사상 두 번째로 빅스텝을 밟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외환부문 리스크를 고려해 정책 대응의 강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창용 총재는 기준금리 고점이 기존보다 다소 높은 3.5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연준의 정책금리 전망치가 상향 조정됨에 따라 한국 기준금리 고점도 더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금리 인상이 채권시장에 줄 타격이다. 통화긴축과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이미 벌어지고 있던 신용 스프레드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급등하는 추세다. 전날 기준으로 국고채와 회사채(AA등급) 3년물 간 스프레드(금리 격차)는 1.42%포인트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 4월 수준이다. 무위험으로 여겨지는 국고채에 비해 회사채에 투자하는 리스크가 그만큼 더 크다고 시장 참가자들이 보는 것이다.
한은으로서는 딜레마에 갇힌 셈이다. 환율을 잡으려다가 국내 채권시장의 불안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지난달 12일 열린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당행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신용스프레드가 더 크게 확대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앞으로 기업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발행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조달 애로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없는지 보다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 큰 난제는 향후 통화정책이 금융·외환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기준금리 인상이 환율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불투명하다. 실제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최대 1%포인트로 벌어진 한-미 금리 역전차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도 한-미 금리 역전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2일 금통위에서 여러 위원들은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 달러 강세가 주도하고 있어 (한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환율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폭을 최소화한다고 해서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을지도 미지수다. 한-미 금리 역전이 자칫 원화 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로 이어질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 증권에서 손을 떼면서 국내 금융 불안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은 국제국은 지난 7월 낸 보고서에서 “과거 한-미 금리가 역전됐던 시기에는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대체로 유입됐다”면서도 “미 연준의 금리 인상 폭이 예상보다 커지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될 경우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상당 폭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한은의 행보는 이달 금융·외환시장의 움직임이 결정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다시금 치솟고 외국인 자본 유출이 가시화하면, 추가 ‘빅스텝’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오는 24일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앞두고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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