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믿는 것을 쓸 뿐”  “역사 속 특정 순간 감정 포착해 기록할 뿐”···노벨문학상·부커상 수상자의 글쓰기

김종목 기자 2022. 11. 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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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왼쪽)와 같은 해 부커상 수상자인 데이먼 갤것(오른쪽)은 세계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 등을 두고 이야기했다. 이석호(가운데)가 지난달 11일 열린 온리안 대담 좌장을 맡았다. 아프리카인사이트 제공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탄자니아), 같은 해 부커상 수상자인 데이먼 갤것(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담 자리는 세계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 등을 두고 벌어진 토론장이었다. 좌장을 맡은 이석호(카이스트 교수,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는 “(구미 문학에는 따리 붙지 않기 때문에) 불온하다”는 여러 질문을 던졌다. 번역 작품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에서 한국 문학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들여다볼 화두이기도 했다.

글쓰기 목적도 대담 화두 중 하나다. 구르나는 억압받는 이들이나 부정의, 불평등에 관해 쓴다. 갤것도 인종분리정책 문제에 관해 적는다. 기후변화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 다만 이들은 글쓰기 목적을 개입이나 반대, 저항이나 변혁 자체에 두지는 않았다. 구르나는 “아는 것, 믿는 것을 쓴다”고 했고, 갤것은 “작가는 기록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문학은 싸움의 도구”라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와는 결이 달랐다.


☞ “문학은 싸움의 무기”···아니 에르노는 왜 노벨문학상 수상 열흘 뒤 거리에 나왔나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10190800001

아프리카인사이트가 지난달 11일 ‘2022 아프리카 문화-인적 교류증진 특별 웨비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 대담을 진행했다.

아프리카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

첫 질문은 ‘세계문학의 관계 속에서 아프리카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이다. 이석호는 이 질문이 ‘불온한 이유’를 두고 “서구 문학이나 구미 문학에는 (세계 문학의 장 안에서 보편적으로 여겨져)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질문을 요약하면, 유럽과 미국 촌구석의 아무도 모를 법한 이야기도 보편성을 획득하며 특별한 이야기로 둔갑한다. 작품 내용과 무관하게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보편과 특수가 결정된다는 의미가 숨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비서구 작가가 쓰는 특별함은 특수성이 되고, 서구 작가가 쓰는 특수성은 특별함이 된다. “세계문학의 불공정한 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구르나가 주로 이 질문에 답했다. 그는 “단순화의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이게 보편성이라고 말하려 한다거나, 이게 아프리카 문학이라고 말하는 식의 단순화 말이다. 하나로 뭉뚱그리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문학은)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때때로 사람들은 세계문학이란 표현을 비유럽 문학을 뜻하는 아주 특정한 의미로 사용한다. (즉) 타인의 문학”이라고 했다.

구르나는 세계에서 널리 사용하는 영어의 힘과 영향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구르나는 “사람들은 유럽이나 미국 출신이 아니라도 영어로 말하고 쓰는 데 능숙하다”며 “당신(이석호)이 말한 서구 문학에는 남아공 같은 다양한 곳에서 들어온 것도 있다. 그래서 서구 문학은 복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열린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영어로 쓰인 글이 많다는 것이 영어권 독자나 영어로 된 것을 읽는 독자들이 다른 문학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구 문학의 우위가 당연한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식, 지식, 세계관을 전달하기 때문에 누가 글을 쓰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구르나는 억압받는 이들의 내러티브 등을 거론하며 “누가 무엇에 반대하며 쓰는지, 누가 읽는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갤것은 “(구르나의) 영어에 대한 부분에 동의한다”고 했다. 남아공엔 11개 공용어가 있지만 작품은 대부분 영어로 출간된다. 영어 외 언어 출간은 돈이 많이 든다. 많은 독자가 읽으려면 영어로 내야 한다. 번역서를 꺼리는 경향 때문에 여러 나라 문학이 외면당한다. 갤것은 여러 상황을 전하면서도 “이런 경향은 바뀌고 있다. 번역 작품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고 했다.

갤것은 최근 남아공 밖에서 열린 아프리카 작가 워크숍에 참여한 일도 전했다. “(경제적 이유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모두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살며 아프리카에 관해 쓰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남아공도 소수 출판사만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 출판사 수는 더 적다. 갤것은 남아공 출신 작가들이 영국 런던이나 미국 뉴욕에서 책을 낸 뒤 다시 남아공으로 가져오려고 생각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곳에서 제작되고 평가받고, 편집되는데, 이것은 식민주의적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런던에 살며 아프리카에 관해 쓰는 아프리카 작가는 영국 작가인가요, 아프리카 작가인가요?”

이석호는 한국 대형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세계문학 시리즈를 내는데, 그중 한 시리즈의 95%가 유럽과 미국 출신 남성 백인 작가 작품이라는 점, 그 선별 기준이 미학·문학적인지, 그 배후에는 다른 기준이 작동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한국 평론가 사이에 깊다는 점을 전했다.

비서구 문학의 약진

두 번째 질문은 서구 문학의 활력은 떨어지고, 아프리카와 비서구 문학 약진이 두드러지는 점에 관한 것이다.

구르나는 “서구의 문화적 지배는 세계 여러 곳의 현상이긴 하지만 모든 곳의 현상은 아니다”며 아랍에미리트연합 샤르자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참석한 일을 말했다. 그는 아랍어 번역가, 아프리카나 남미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커 놀랐다고 했다. 최근 나이로비에서 만난 앙골라와 케냐 등지에 온 아프리카 작가들이 코스모폴리탄적 인식에 초점을 두고 “아프리카 밖에 살며 (아프리카와 밖의) 연결고리를 고민, 탐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말했다. 그는 “제가 쓰는 것은 저의 상상력이 있는 곳이다. 작가가 어디에 사는지가 작품의 진정성이나 근원, 타당성을 정하는 데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1년 아프리카 작가들이 이른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노벨상, 부커상, 공쿠르상을 받은 것을 두곤 “‘서구가 쇠락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라기보다, 아프리카 작가들이 존중받는 곳에서 출간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여성 작가들에게도 일어난다고 했다. “독자들이 그동안 외면하고 알지 못했던 작품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연 것으로 생각해요. 정말 변화를 만든 것은 작품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프리카인사이트 제공

갤것도 서구 문학의 쇠락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구 출판계가 그 지평을 넓히며 다른 곳에도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주목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갤것은 아프리카 밖에서 아프리카에 관해 쓰는 작가들의 진정성에 관해서도 말했다. “남아공 작가들에게 망명이 아주 중요하고 고통스러운 주제였어요. 훌륭한 흑인 작가들이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나라를 떠나 다른 곳에 살아야만 했죠. 그 고통과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한 망명은 작가의 일부가 되고, 다시 작품의 내러티브에도 반영이 되는 식이죠.” 그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이동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움직인다”고 했다.

자본주의와의 싸움

이석호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지구적으로 부상하는 데는 고무적 측면이 있지만 위험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 작가들이 통속적인 용어로는 서구화, 인문학적 용어로는 근대성을 바라보는 데 제한적인 태도가 있다고 했다. 근대성을 유럽중심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보면서 그 대항으로 아프리카 문학을 생산해내는 흐름이 있다고 봤다. 이석호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이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근대화에 대한 싸움을 병행하지 않으면 아프리카 문학이 세계문학 안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목소리로 부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아프리카 작가들이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싸움은 치열하게 하면서도 자본주의 문제는 왜 침묵할까를 두고 던진 질문이다.

데이먼 갤것. 아프리카인사이트 제공

구르나는 여러 작가가 식민주의에 관해 썼지만, 유럽에 반대하기 위해 썼던 건 아니라고 했다. 갤것은 “글쓰기가 항상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는) 오히려 기록”이라며 “소설가의 힘은 어떤 순간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느끼는지를 말하는 데 있고, 역사 속 특정한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구촌 문제, 문학의 역할

갤것은 지구촌이 당면한 문제와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세 번째 질문에서 답을 이어갔다.

갤것은 불평등한 시스템 때문에 삶의 여건이 좋지 않은 흑인 남아공 작가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들의 소설은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를 버티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생존의 몸부림)에 관한 것”이라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작가들이 스스로를 자본주의에 맞서는 전사라고 생각한다곤 보지 않는다”고 했다. “소수의 작가만이 전 지구적 상황이 어떤지, 무엇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인지, 어떻게 위협이나 상황에 대항하기 위한 소설을 쓸 것인지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더 큰 것에 대항하는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은 첫째 자기표현이다. 저는 (특정한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저의 아주 작은 경험만을 보탤 뿐”이라고 했다.

갤것은 지구촌 문제를 두고 “정치적으로 많은 국제 세력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편에 서 있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라고 했다. 그는 “우리 모두, 사람들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투쟁으로 이끌어야겠지만, 저는 제 작은 재능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작가들은 어쩌면 무엇이 오든 간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기록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르나도 ‘위기의 시대 작가의 책무’나 ‘지구촌 위기의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두고 “(그 책무나 역할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도 “쓰는 것 외엔 제 역할을 모른다”고 했다. 앞서 발언과도 이어졌다.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 쓰지 않는다. 그래서 제 역할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들이 제 책을 다 읽고 삶을 바꾸라고 말하려고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 아는 것을 씁니다. 제가 목격한 부정의, 혹은 불평등, 행복, 사람의 관계, 이런 게 제가 쓰는 겁니다.” 그는 “인간으로 사는 것, 살아가는 것을 두고 이해하는 것을 말하고 싶고, 우리에게, 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도 했다.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는 크나큰 질문을 무언가 하고 싶은 사람에게 넘기겠다”고도 했다.

구르나는 대담 모두에도 “제가 아는 것, 믿는 것을 쓴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어딘가에 가닿는 거죠. 어딘가로 전해지는 거죠. 그리고 무언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런 주고받음이 글쓰기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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