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의 '배신'...암 조기선별 위한 검사, 효과 '글쎄'
건강한 상태에서 단순히 암 조기 발견을 목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은 사람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필요할 때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사람의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하엘 브레타우어 노르웨이 오슬로대병원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9~2014년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네덜란드에서 55~64세 사이의 건강한 남녀 8만4585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참가자들 중 3분의 1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선별검사를 목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일상생활을 하던 중 병의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권유하면 검사를 받았다.
대장내시경을 받은 참가자 중 일부는 검사를 받고 대장 용종을 제거했다. 대장 용종은 대장의 점막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혹이 돼 안쪽으로 돌출된 상태를 의미한다. 15명의 참가자는 용종을 제거한 후 심한 출혈 증상을 보였지만 제거 1달 이내 천공 등 대장내시경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없었다.
최장 10년간 추적관찰 결과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 효과는 두 그룹 간 큰 차이가 없었다. 대장내시경을 받은 참가자들의 사망위험률은 0.28%로 나타났으며 의사의 조언이 있을 때만 검사를 받은 참가자들의 사망위험률은 0.31%였다. 대장암을 포함한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은 대장내시경을 받은 참가자들이 11.03%, 의사에 조언에 따라 검사를 받은 참가자들이 11.04%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또 의사의 조언에 따라 대장내시경을 받은 참가자들의 검진 효과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추적 관찰 결과 대장암 발생 위험률은 대장내시경을 받은 그룹이 0.98%였으며 일반적인 진료에 따른 참가자들이 1.20%였다.
연구팀은 “대장내시경 검사는 대장암 발생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널리 시행되지만 대장암 사망률 감소 효과가 있는지는 불분명했다”며 “다만 조기선별 목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에게서 대장암 발생 위험이 더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1건의 대장암 조기예방 사례를 위해선 455건의 대장내시경 검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의학계 "암 조기발견 목적 대장내시경 유효" vs "의사 판단 있을 때만 받으면 돼"
이번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의학계에선 대장내시경의 조기선별 효과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증상이 없어도 점검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한다는 쪽과 의료자원 효율을 고려했을 때 의사의 조언에 따라서만 실시하면 된다는 의견이 맞선다.
캐나다 맥마스터대가 운영하는 의학커뮤니티 ‘맥마스터옵티멀에이징포털’에서 가정의학과 분야 진료를 본다고 밝힌 일반의는 “암 조기 선별을 목적으로 대장내시경을 실시할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대규모 연구 결과”라고 평가하며 “예방 효과를 위해 필요한 검사 수를 고려하면 의료경제학자 관점에선 비판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데이터가 대장내시경의 이점을 과소평가하는 약간 편향된 방식으로 제시됐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 다른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유럽의 연구결과로 다른 국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대장암 발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만을 앓는 환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서울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젊은 대장암 환자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초기 증상이 미미한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선 정기적인 대장내시경 검사는 충분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대장암 발생 위험성은 동네 병의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조기에 판단할 수 있다”며 “의료자원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대장내시경 검사 시행률을 낮추기 위해선 의사의 권유가 있을 때 검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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