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황석희 "父 떠나고 2년간 소송했던 이유" 이태원 참사, 절절한 공감

박효실 2022. 11. 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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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 출처 | 황석희 홈페이지

[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엑스맨’ ‘데드풀’ 등 60여편의 외화를 번역한 유명 번역가 황석희(43)씨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태원 압사 참사를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제안해 공감을 샀다.

황씨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골목에서 목숨을 잃은 156명의 희생자를 비롯, 총 300여명의 사상자와 남겨진 유족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은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고, 사후 조치를 확인시켜 주는, 어떤 식으로든 납득할 만한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직언했다.

단지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애도가 아니라 참사의 진실을 밝혀 유가족에게 참사의 시작과 끝, 그리고 해결이라는 실질적 종결을 마련해 주어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첫 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는 2일 ‘가족 잃은 자를 위한 종결’ 이라는 손글씨가 적힌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기빙 뎀 어 클로저(giving them a closure)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종결을 주다’라는 뜻인데 사법의 영역에선 관계 당국이 범인을 잡아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여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 일종의 ‘맺음’을 주는 것을 말한다”라고 말을 꺼냈다.

출처 | 황석희 채널

이어 7년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오랜 시간 소송을 벌여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몰두한 일을 떠올렸다.

그는 “7년 전, 아버지는 차를 몰고 정차 후 좌회전을 하려다 좌측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던 차와 추돌했다. 속초 산길의 좁은 교차로였고 신호등이나 볼록 거울 따위는 없었다. 아버지의 차는 정차 후 갓 출발해 고개만 튼 상태였고 좌측에서 내려오던 차는 속도가 붙어 있었다. 추돌 후 아버지의 차는 세 바퀴나 굴러 전복됐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즉사였다. 조수석에 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라고 적었다.

그는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얼굴만 맞대면 싸우는 견원지간 같았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던 장례, 그 와중에 날 가장 황당하게 한 것은 아버지에게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는 거다. 상대 차량은 피해 정도가 경미했다. 부상자도 없었다. 그런데 직진 우선이라는 원칙 하나로 아버지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이런 맺음은 인정할 수 없었기에 재판을 청구했고 2년을 법정에서 싸웠다. 하지만 결론은 상대방 과실과 교통부의 과실을 아주 일부 인정받았을 뿐이다. 주황색등이 깜빡이는 길이었음에도 과속과 전방주의 태만을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국과수에 의뢰해도, 민간에 의뢰해도 쉽지 않았다. 차가 세 바퀴를 구르고 전복할 정도였으나 과속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항소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시스템이 주는 종결은 받았다. 그 길 좌측의 간판과 나무가 모두 제거됐고 볼록 거울이 생겼고 내리막길엔 과속 방지턱과 과속 방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불만스럽더라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의 종결. 그 결과를 받고서야 아버지 차를 폐차할 수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매달렸고, 작지만 받아들이만한 종결을 짓고서야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종결’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2년이나 폐차 동의서에 서명을 못 했다. 피가 잔뜩 말라붙어 종잇장처럼 구겨진 그 차를 폐차도 하지 않고 지옥처럼 2년이나 붙들고 있었다. 도저히 폐차할 수가 없더라. 그 족쇄 같던 차를 종결을 받은 후에야 간신히 폐차했다. 그게 내겐 맺음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여전히 사고 차량이나 전복 차량을 보면 공황장애가 오고,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와서 차를 갓길에 세운다고도 했다.

그는 “남겨진 자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주는 것이다.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묻고, 사후 조치를 확인시켜 주는 것. 유가족에겐 저런 시스템 상의 종결이 완전한 종결이 되지 못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다만 그런 종결이라도 있어야 개인적인 맺음을 향한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 그 걸음이 평생이 걸리더라도 그 계기는 될 수 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빗대 말했다.

이어 “우리의 애도는 무용한 것은 아니겠으나 유가족에게 그리 닿지는 않는다. 애도는 오히려 유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담한 내 마음을 위한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이다. 지금은 책임자들이 유가족에게 앞다투어 애도와 위로를 건넬 때가 아니라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라고 적었다.

황씨의 장문의 글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누리꾼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어 저희에게 나누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현재 나오고 있는 많은 말들 중에 가장 와닿아 이렇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남겨봅니다” “번역가님의 글을 읽고 다시금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분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감하고 또 공감합니다”라고 말했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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