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뽑듯 ‘번쩍’ 30명 구해낸 흑인남성 찾았다… 주한미군 3명

문지연 기자 2022. 11. 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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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인 지난달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를 메운 인파. /뉴스1

“꼼짝 못하던 저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밭에서 무를 뽑아내 듯이요. 그날 절 살려준 흑인남성분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A씨가 애타게 찾은 생명의 은인은 누구였을까. 흑인남성이었던 그는 키 182㎝·몸무게 96㎏의 A씨를 번쩍 안아 올려 구조할 만큼 강했다. 이후에는 다른 외국인 동료 두 명과 함께 인파 속 사람들을 한참동안 빼냈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그들이 구해낸 목숨은 A씨가 목격한 것만 세어도 족히 30명은 됐다.

A씨의 경험담이 전해지고 새로운 목격담이 더해지면서 그날 그 의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근무하는 미군 자밀 테일러(40), 제롬 오거스타(34), 데인 비타드(32)다. 이들은 앞서 사고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AFP통신과 인터뷰를 갖고 참사 상황과 구조 활동을 전했는데, 같은 날 A씨가 마주한 일들과 일치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3명은 주말 비번을 맞아 핼러윈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 당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을 걸었고 양쪽으로 밀려드는 인파에 떠밀려야 했다. 위기감을 느낀 셋은 벽을 타고 간신히 주변 난간으로 피신했지만, 곧바로 벌어진 광경은 참혹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사고 희생자를 위한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련성 기자

테일러는 “우리가 군중에서 빠져나온 뒤 잠시 후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서로의 위로 쓰러지기 시작했다”며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졌고 상황은 더 악화됐다. 비명소리가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세 사람은 즉각 구조에 나섰다. ‘살려달라’ 소리치는 사람들을 인파 속에서 꺼내 근처 상가와 클럽으로 대피시켰다.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도록 희생자들을 넓고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내 팔과 겨드랑이 쪽을 잡고 들어 올린 뒤 인근 술집에 데려다줬다”는 A씨 증언 속 상황 역시 이때였다.

이들은 밤새 골목 가장자리에 머물며 구조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오거스타는 “물러서라고 소리쳤지만 너무 늦었다”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비타드도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꽉 끼여 있었기 때문에 구조대원들도 쉽게 그들을 구출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밤새도록 깔린 사람들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장을 벗어날 즈음 떠올리면서는 “우리가 떠날 때 모든 곳에 시신이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이 인터뷰를 지인에게 전달받아 읽고 기사 속 세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살린 은인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일행이 갇혔던 곳은 골목 중간 위치여서 구조대가 제일 늦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미군들이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에 나선 덕분에 인명피해가 줄었다. 그들을 꼭 만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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