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세장에도 새로운 상장수단으로 부상...증시추락에 주목받는스팩
이름도 낯선 스팩이 주목받고 있다. 스팩은 비상장기업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다. 금융위기 이후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우량 중견·중소기업의 상장을 돕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됐다. 통상 2000원에 신주를 발행하고 공모를 통해 자금을 모아 상장한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안에 비상장기업과 합병해야 한다. 만약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원금 2000원에 이자를 더해 주주에게 배당하고 청산된다. 최소 2000원의 원금이 보장되는 셈이다. 주가가 1800원인 스팩을 매수했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스팩이 M&A에 실패하고 청산한다면, 투자자는 공모가 2000원에 이자(연 1.5~2%, 3년간 4.5~6%)를 더한 금액을 챙기게 된다. 물론 우량 기업과 합병에 성공하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도 얻을 수 있다.
급락하는 증시 상황과 비교하면 스팩 시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한 스팩은 총 29개다. 지난해 스팩 상장이 25개에 그쳤던 것과 비교해 대폭 늘었다. 상장 절차를 진행 중인 스팩까지 감안하면 종전 최고치였던 45개(2015년)도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0월17일 일반 투자자 청약을 진행한 삼성스팩 7호는 429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보통 공모가 2000원이었지만 이 스팩은 1만 원으로 공모했다. 일반 청약에 몰린 증거금만 3조 원이 넘는다. 스펙에 조 단위 청약금이 몰리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최근 2년간 삼성증권이 설립한 스팩이 줄줄이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했던 만큼 일반투자자의 관심이 쏠렸다. 삼성증권이 상장한 스팩의 주가가 상장 직후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가가 급등했던 바 있다.
코스닥에서 거래 중인 삼성증권 스팩은 삼성스팩4호와 삼성머스트스팩5호, 삼성스팩6호 등 3개다. 이 중 지난해 5월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상장 2일 차부터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삼성머스트스팩5호도 지난해 6월 상장한 당일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에 형성된 후 상한가)’을 기록한 이후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나타냈다.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었던 올해 6월 상장한 삼성스팩6호 역시 상장 첫날 ‘따상’을 기록한 뒤 3거래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다.
스팩을 통한 합병 사례도 크게 늘었다. 올해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기업은 총 10개다. 추가로 7개 기업이 심사 승인을 받았고, 청구서를 접수해 심사가 진행 중인 기업은 8개사다. 해당 기업들이 모두 심사 승인을 받는다고 하면 올해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하는 기업은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7년 21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스팩 합병은 직접상장과 부분적인 대체재 관계에 있다. IPO 시장이 호황일 때는 상장희망 기업들이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직접상장으로 몰린다. 반면 IPO 시장이 부진할 때는 확실한 규모의 자금 조달이 가능한 스팩 합병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팩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직상장이 불가능한 ‘부실’ 기업의 우회상장 경로로 치부되곤 했다. 최근 좋은 비상장기업이 스팩으로 증시에 입성하며 의미 있는 상장의 통로로 간주된다. 스팩 합병을 추진할 때도 상장예비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직접 상장보다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 기준이 적용되고 심사 기간도 짧은 편이다. IPO 시장 부진과 한국거래소의 예비심사 강화도 비교적 상장이 용이한 스팩 합병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 위험도 있다. 스팩은 통상 M&A 소식이 있을 때 주가가 오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아 유의해야 한다. 스팩들의 평균 시가총액은 200억 원 미만이다. 몸집이 작은 데다 유통 물량이 많지 않다. 따라서 적은 거래 대금으로도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세력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합병 후 스팩 주주는 합병완료기업의 주식을 나눠 갖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추가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공모가나 그 이하에서 매수했을 때만 스팩 안정성이 담보된다는 얘기다.
[글 명순영 기자 사진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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