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설거지 앞에서 나는 노래를 들어...과몰입에 한 스푼 더하는 플레이리스트
최근 가을 감성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는 에디터는 퇴근 후 노이즈 캔슬링 속에 노래와 나만이 존재하는, 일종의 휴식 시간에 자주 빠져든다. 또 무수히 쌓인 설거지 접시 앞에선 승부욕 높이는 노래를 통해 접시를 부술 것 같은 의욕으로 설거지에 임하기도 한다. 오디오 콘텐츠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시대, 우리는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는가.
최근 에디터의 유튜브 화면에는 ‘가을 감성’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맞춤 플레이리스트’가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어디 한번 들어보지’라는 마음으로 클릭하는데, 이내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최근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들은 대부분 급격히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상향 그래프의 화살표 지점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성장세는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 시장의 확대와, 취향 맞춤 콘텐츠 시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각 플랫폼 채널에서도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도서 『BGM』은 뮤지션 스탠딩 에그와 『hep』 매거진을 발행하는 폴라웍스아트코가 함께 선보이고 있는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책은 ‘일상 속 음악이 필요한 순간’을 주제로 선정, 음악을 일상 가까이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상 곳곳을 채우는 좋은 음악들을 소개한다. 매 섹션 별로 플레이리스트, 앨범, 개별 곡 추천도 함께 넣었다. 양질의 음악들을 한데 모아놓은 뮤직 아카이브 북인 셈이다. 가수 이석훈이 진행 중인 유튜브 채널 ‘썰플리’는 사람들의 썰을 모아 만든 유기농 플레이리스트 채널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난 시민들에게 ‘이럴 때 듣기 좋은 노래’들을 추천받아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완성시킨다. ‘스포티파이’는 청취자의 스타일에 맞추는 개인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신규 기능 ‘겟 레디 위드 미(GRWM)’ 기능을 론칭했다. 운동을 준비하든,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든, 오늘의 스타일(활동, 옷 색상, 기분에 맞는 옷 재질 등)을 선택하면 이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가 생성된다. 오늘의 스타일과 기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제공해 외출 준비 과정을 더욱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스트리밍 플리 시대가 열렸다
자신이 듣기 좋은 곡을 모아서 하나의 장르로 올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하며 본격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 시대가 열렸다. 대체로 플레이리스트 영상의 경우 원곡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수익 창출의 목적보다는,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를 통해 다른 사용자들 역시 ‘듣는 순간 네 곡 내 곡’, ‘숨듣명’(숨어서 듣기 좋은 명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플레이리스트 제목과 음악, 그 안에 오롯이 담긴 감성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마치 요즘 시대 MBTI 열풍과도 결이 비슷하다. 또는 7080년대 시절과 비유하자면 마치 음악 다방에서 DJ가 모아놓은 곡을 듣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도서 『2022 콘텐츠가 전부다』에서는 ‘I’m inevitable: 오디오시장을 넘보는 타노스, ‘유튜브’’라는 키워드를 선정한 바 있다. 2019년쯤 등장해 유튜브 선곡 인기 채널이 된 ‘때껄룩’, ‘코지팝’ 등 현재 많은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는 방식이 멀티태스킹 중심으로 바뀐 것이 크다. 음악을 듣는 것이 주목적이 아닌 보조가 되면서 분위기(Mood) 기반의 플레이리스트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사람들을 사로잡은 플레이리스트엔 무엇이 있을까. 유튜브에서 올해 업로드된 플레이리스트 중 조회수가 높은 콘텐츠를 살펴봤다(기사 작성일 10월 19일 기준). 먼저, 지난 4월 그룹 빅뱅이 컴백하며 빅뱅의 노래를 모아 놓은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빅뱅이다’(-Bi*****)를 시작으로, ‘딱 요즘 듣는 잔잔한 인디들’(-오**),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기다리는 사람?’(-때**)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외에도 ‘도입부 너무 좋아 미쳐버린 팝송만 모아 봤습니다’(-Tu*****), ‘소울리스좌가 부릅니다, 여름 노래 플레이리스트’(-티**), ‘무드가 흐르는 파리의 어느 한적한 강가에서’(-네고********), ‘나의 오래된 MP3속, 2000년대 발라드 노래’(-나의******) 등을 발견할 수도 있다.
대체로 분위기와 접목시킨 플레이리스트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상황에 따른 과몰입 플레이리스트의 경우 최근 많은 2030세대의 흥미를 끌고 있다. 올해 공개된 플레이리스트에선 ‘소설 읽을 때, 글 쓸 때 듣는 과몰입 플리’(-1*****), ‘나 지금 동천파 보스임’(-떤*), ‘아포칼립스, 종말의 밤 플레이리스트’(-일****) 등의 콘텐츠에 사용자들의 댓글이 끝없이 이어진다. 일례로 ‘나 지금 동천파 보스임’ 플레이리스트는 드라마 ‘마이 네임’ 속 캐릭터 최무진(배우 박희순 분)을 내세워, ‘Unlike Pluto - Everything Black(feat. Mike Taylor)’, ‘X Ambassadors - HEY CHILD’ 등의 곡을 포함시켰다. 해당 콘텐츠엔 최무진의 명대사부터 드라마 속 인상 깊은 장면 등 구독자들의 댓글이 끊임없이 이어져 하나의 볼거리를 더하는 ‘댓글 맛집’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플레이리스트 감성에 공감하고, 소리를 일종의 세계관 콘텐츠로써 즐기는 시대에 플레이리스트는 하나의 놀이의 장이 되고 있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및 일러스트 포토파크, 각 유튜브 채널 갈무리, 스포티파이 참고 도서 『2022 콘텐츠가 전부다』(노가영 외 저 / 미래의창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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