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發 돈맥경화...은행 자금공급 독려는 '최선의 차선책'
한국투자증권은 3일 레고랜드 채권 부도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을 푸는 것은 '난제'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차선책'이라고 평가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크레딧 전문위원은 2022년 현재 단기자금시장 경색은 2020년 코로나19(COVID-19)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2020년 코로나19 창궐 초기 글로벌 금융시장이 폭락했고 ELS(주가연계증권) 마진콜이 발생하며 단기자금시장 경색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채안펀드 조성, 산은·기은 회사채 CP(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 가동 등 대책을 내놓았다. 또 증권사 유동성 지원책으로 한국은행의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 한국증권금융 유동성 공급 등 지원조치를 단행했다.
김 위원은 2022년 상황이 2020년 초와 유사하지만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2020년 당시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가 급격한 금리인하로 유동성을 대거 공급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무제한 RP 매입에 참여했다. 즉 정부가 금융시장 급변에 따른 유동성 경색에 마중물을 공급하며 시장 심리를 안정시켜 시장의 회복속도가 빨랐다. 급락했던 채권 가격이 빠르게 회복됐고 크레딧 채권을 매수하면 자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둘째는 2020년 단기자금시장 경색 원인이 금융시장 급변동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금융시장이 빠르게 회복되며 자산가치가 반등해 자금시장 경색의 근본 원인이 해결됐다.
김 위원은 "지금은 금리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시기로 은행도 자금에 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의 자금시장 지원 대책에 PF(프로젝트파이낸싱)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CP 매입 등 전향적 조치가 포함되며 정부 지원의지도 확고하지만, 크레딧 채권시장의 기능 회복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관의 자금 여유가 없고 여유자금 있는 일부 기관도 금리인상기 자본손실을 우려해 크레딧채권 매수를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 단기자금시장 경색 원인은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 냉각에 따른 부동산PF 신용위험 증가로 최근 금리인상 기조를 감안하면 부동산 경기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금융당국의 지원조치 등에 의해 단기자금시장이 정상 작동하게 돼도 부동산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부동산PF의 신용위험 증가 상황에 바뀌는 게 없다"며 "시장 긴장감은 일정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단기자금 경색 문제를 푸는 것은 2020년과 비교해 '난제'라고 봤다.
김 위원은 "한국은행의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CP 매입기구(SPV), 무제한 RP 매입 등 자금시장에 대한 매우 충분한 지원조치로 마중물을 크게 퍼부을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시장이 안정을 찾아 강원도 지급보증 불이행과 같은 헤드라인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되면 브릿지론 등 부동산 신용 위험이 있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충당금 적립과 함께 필요시 증자를 통한 완충능력 제고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조치가 단행된 후에야 크레딧 채권시장의 신뢰 회복이 이뤄질 거란 분석이다.
정부의 자금시장 비상 대책을 살펴보면 채안펀드 매입대상채권에 시공사 보증 PF ABCP가 포함됐고 산은·기은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에 증권사 CP 매입이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금융시장 지원 프로그램에서 포함하지 않았던 조치다.
그는 "신용등급 A1 제한 등 아쉬운 점이 있지만 시장이 가장 필요로 했던 전향적 조치"라며 "PF 기피심리를 완화시킬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총 50조원+α의 지원금액은 절대규모 측면에서 투자심리 안정과 이에 따른 시장기능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다. 이는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을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증액하고 HUG(주택도시보증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을 10조원 규모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한국은행도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발표했다. 한은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RP매매 대상증권에 한전채 등 9개 공사채와 은행채를 포함하고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제공비율의 단계적 인상 계획을 3개월간 연기하기로 했다.
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둔촌주공 PF ABSTB 물량 인수, 계열 금융사 자금지원, 채안펀드 적극 참여, 여전채·특은채·회사채·CP·ABCP·RP 매수, 한전 등 공기업 자금공급 확대, 은행채 발행 자제, MMF(머니마켓펀드) 운용규모 유지 등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역할을 하도록 조율 중이다.
KB·신한·하나·우리·농협금융지주 등 5대 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일 모임을 갖고 연말까지 총 95조원의 시장 유동성(시장 유동성 공급 73조원, 채안펀드·증안펀드 12조원, 금융그룹내 계열사 자금공급 10조원)을 지원키로 했다.
김 위원은 "예금 급증으로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금융기관인 은행을 독려해 시장에 자금이 돌게 하려는 조치"로 "현실적으로 자금시장에 실제 자금이 유입되게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치로 판단한다"고 했다.
그밖에 금융당국은 보험사 유동성비율 규제 완화 등 각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유동성을 확보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은 증권사와 증권금융 등 기존 RP매매 대상 7개 기관으로부터 총 6조원 규모 RP 매입도 실시하기로 했다. 무제한 RP 매입이나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CP 매입기구(SPV) 재가동은 이번에 결정되지 않았다.
그는 "한은은 금리인상기 유동성 공급 결정이 통화정책 엇박자로 비쳐, 영국처럼 시스템 리스크 발생이 우려됐던 상황이 국내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결국 정부의 자금시장 비상대책은 1)현재 자금시장 경색의 원인인 PF ABCP와 증권사 CP를 매입대상에 포함하고 2) 한국은행이 본격 등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 완화시 거의 유일하게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금융기관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게 하는 것이다.
김 위원은 "95조원에 달하는 시중은행의 자금공급계획규모는 충분한 수준으로 판단한다"며 "이는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조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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