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둥 옆에서 먹는 매운 라멘, 바닷속에서 즐기는 생선요리…모든 경험이 예술이 된다
레스토랑·쇼핑몰부터 문화재까지…
미디어아트에 홀린 공간들
시각·청각에 미각을 더하다
日 교토·도쿄의 라멘집 '우주'
미디어아트 작품 일부가 돼 식사
佛 파리의 '에페메라' 레스토랑
테이블 사이 물고기가 헤엄쳐
오프라인 '압도적 경험의 힘'
디올, 대형 미디어아트 쇼윈도
버버리, 제주 자연 담은 매장
수원 화성·부여 부소산성 등
세계유산에 미디어아트 입혀
상상하지 못한 모든 장소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하게 하는 것.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시각은 물론 청각, 후각, 촉각까지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으로 감상하는 미디어아트는 이제 럭셔리 브랜드와 자동차, 문화재, 레스토랑, 대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과 결합하고 있다. 이렇게 미디어 아트는 모든 경계를 허물면서 ‘일상 속의 예술’을 가능케 한다. 온라인에서의 ‘간접 경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을 위해 상업 공간들은 앞다퉈 오프라인 공간에 미디어아트를 들여놓고 있다.
오감으로 먹는 日라멘집 ‘우주’
일본의 라멘집 ‘우주(UZU)’. 육류를 쓰지 않는 ‘비건 라멘’을 메뉴로 내건 이 레스토랑은 2020년 교토에 처음 등장했다. 지난해 도쿄에도 진출하며 1년 만에 세계적 미식 가이드 미쉐린의 ‘빕 구르망(합리적인 가격과 맛으로 주목할 만한 식당)’에 선정됐다. 일본엔 수만 개의 라멘집과 라멘 장인들이 있지만 우주 라멘 두 지점엔 요즘도 매일같이 긴 줄이 늘어선다.
우주 라멘을 ‘스타 식당’으로 만든 건 바로 공간. 천장과 벽, 바닥과 테이블, 의자의 경계조차 사라진 거대한 미디어아트 작품 속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해서다. 교토점에 간 손님들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요동치는 붓질의 향연이 인상적인 ‘Reversible Rotation(뒤집어진 순환)’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 레스토랑은 일본에서 태어난 세계적 미디어아트 그룹 ‘팀랩’이 만들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등 복합적인 감각으로 즐기는 미디어아트의 영역에 ‘미각’까지 더한 혁신적인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팀랩의 미술관 ‘팀랩 플래닛’에 문을 연 우즈 도쿄에는 ‘Imaginary Image Reversal Indiscretion(무분별하게 뒤집어진 상상의 이미지)’ ‘Long Table For Sky and Fire(하늘과 불을 위한 긴 테이블)’ ‘One Bench(하나의 벤치)’ 등의 몰입형 작품이 전시된 장소를 택해 이와 어울리는 메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예컨대 메뉴 중 하나인 ‘불꽃’은 톡 쏘는 매운맛과 향이 특징. 이 메뉴를 주문하면 ‘하늘과 불을 위한 긴 테이블’에서 먹는 것을 추천받는다. 레스토랑 측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 입자의 우주와 연결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한다. 천장과 바닥까지 연결된 기둥에 용암이 흘러넘치는 것과 같은 미디어아트 속에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다. 비건 라멘과 미디어아트가 접점을 찾은 이유는 분명하다. 지구와 환경, 자연과 순환을 고민하는 요즘의 채식주의자들에게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이와 같은 주제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바다로, 숲으로…5분마다 바뀌는 공간
프랑스 파리의 ‘에페메라’ 레스토랑은 깊은 바닷속에서 식사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테이블과 바닥 면엔 산호와 해조류들이 둥둥 떠다니고 테이블 사이를 가로지르는 벽면엔 해양 생물들이 쉴 새 없이 헤엄친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공간이 몇 년 새 많이 생겼다. 서울 성수동의 카페 ‘봇봇봇’은 로봇 전문기업 티로보틱스와 디스트릭트홀딩스가 협업해 만들었다. 30년 넘게 금속레이저 공장이던 건물에 새 건물을 연결하고 벽면 하나를 거대한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쓴다. 5~6개의 미디어아트가 5분마다 새롭게 펼쳐져 시시각각 온전히 새로운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연남동 카페 ‘달세뇨’ 역시 카페 전체가 하나의 미디어아트다. 서울 서촌과 연희동 등에 있는 카페 ‘궤도’는 지점마다 ‘행성’ ‘파도’ 등 각각 다른 미디어아트를 선보여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천년고찰도, 제주 만장굴도 빛으로
패션 브랜드가 미디어아트를 끌어들인 건 오래된 일이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올해 성수동에 플래그십 매장을 내면서 삼성동 코엑스 광장에 있는 K-POP스퀘어의 초대형 미디어아트 전광판을 쇼윈도로 사용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디올의 드레스들이 차례로 지나가며 금빛 물결 사이로 건물 외관이 드러나는 영상이다. 매장 안에도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들어섰다.
디올은 2016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새 주얼리 제품을 공개하며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접목된 ‘디올 오트 주얼리 디너’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궁전의 천장과 벽면을 모두 활용해 화려한 샹들리에가 내려왔다 사라지고, 장미꽃이 피었다 지는 등 신비한 공간 연출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제주에 거대한 피라미드와 같은 체험형 전시장 ‘이매진드 랜스케이프’를 열어 화제를 모은 버버리도 당시 세 명의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해 전시 공간을 채웠다.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이 바다가 되거나 제주의 자연을 닮은 숲이 펼쳐지기도 했다.
대자연과 역사적 건축물, 익숙한 도심의 건물 외관은 때론 미디어아트를 담는 최고의 그릇이 되기도 한다. 2017년 일본 오키나와 추라선 비치에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풍선들이 한밤중엔 바다를 빛내는 화려한 조명이 돼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국내에선 문화재청이 세계유산에 미디어아트를 입히는 행사를 매년 하고 있다. 올해는 수원 화성과 부여 부소산성, 공주 공산성, 익산 미륵사지, 고창 고인돌유적, 양산 통도사, 함양 남계서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선정돼 가을 내내 불을 밝혔다. 이 중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만장굴 입구 등에서 열리는 미디어아트 축제는 이달 말까지 즐길 수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내년 하반기까지 리모델링하는 KT 사옥 공사 가림막이 대형 미디어 파사드로 변신한다. 매일 저녁 해가 지면 이 건물 외벽에 예술 작품들이 펼쳐진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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