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나온 이야기 층층이 쌓아올린···홍상수 ‘탑’[리뷰]
“내가 오만가지 인물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삶에서 나온 것들이 새 배열을 찾고 새 표현방식을 찾을 뿐이다.”
홍상수 감독은 11년 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2번째 장편영화를 내놨을 때다. 그가 만든 28번째 장편영화 <탑>이 3일 개봉했다. 이번에 홍 감독은 삶에서 나온 것들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영화는 한 건물만 비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해옥(이혜영)의 건물이다. 영화감독 병수(권해효)는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싶은 딸 정수(박미소)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던 해옥을 찾아간다. 건물 1층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세 사람은 얘기를 나눈다. 해옥은 건물을 층층이 방문하며 병수 부녀에게 소개해준다. 2층은 1층과 같은 식당인데 예약을 한 손님만 이용할 수 있는 좀 더 닫힌 공간이다. 3층과 4층은 거주 공간이다. 해옥은 문을 막 열고 들어간다. 3층에는 커플이 산다고, 4층에는 어떤 사람이 혼자 사는데 문을 잘 안 열어주고 안에 있어도 대답도 안 한다고 설명한다. 해옥의 설명에 “그러냐”고 대꾸하던 병수는 영화의 다음 시퀀스에서 해옥의 말대로 살고 있다. 영화는 2층에서 식당 주인과 밥을 먹는 병수를 보여준다. 그다음 시퀀스에서 병수는 3층에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다음에는 4층에 혼자 살면서 해옥에게 문을 안 열어준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같기도 하고, 평행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도 홍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섞여 들어갔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감독의 경험일까도 영화를 흥미롭게 한다. 딸 정수는 해옥에게 아빠를 “여우”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감독으로서의 이미지를 보고 아빠를 좋아하지만,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는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해옥은 집 안에서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밖이 더 진짜일 수도 있다고 대꾸한다. 병수는 자신의 영화를 ‘술 마시면서 보기 좋다’ ‘깔깔 웃으면서 본다’고 표현하는 젊은 여성에게 흥미를 느낀다. 병수는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신을 믿지 않았다가 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건강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았다가 건강해지려고 고기를 챙겨 먹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는 연애관계 속에서 늘 기다리는 역할이지만, 가족만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다.
인물들은 만져지는 듯하고 대화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현실적인 가운데서도 영화는 뚜렷한 구조와 방향을 가지고 나아간다. 홍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새로움을 주고, 홍 감독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홍상수다움’을 알려줄 만한 작품이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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