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문화이야기]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공연…압도적 시너지에 쏟아진 기립박수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엘리자벳'이 공연 마지막날인 오는 13일까지 일주일 남짓 남기고 기립박수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27년간 12개국에서 누적 관객 1,100만 명을 기록한 스테디셀러 극으로 역사와 판타지 요소를 결합해, 650년 전통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고전미를 담은 의상과 세트, 무대예술이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공연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뮤지컬 배우들이 출동해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어제(2일) 관람한 공연 리뷰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 역에 매 시즌 출연하며 '살아있는 엘리자벳' 찬사를 들은 옥주현은 해맑았던 어린 엘리자벳부터 세월의 풍파를 맞은 말년의 엘리자벳까지, 한 인물의 감정선의 변화를 미묘한 음성의 떨림까지 세밀하게 무대에서 보여줬습니다.
특히 주체적인 삶과 자유를 갈망하는 핵심 곡 '나는 나만의 것'에서는 원판 위를 숨가쁘게 걷고, 또 순식간에 달려나가면서도 옥주현만의 폭발하는 고음을 관객들의 기대에 맞게 완벽하게 처리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죽음이란 허구적인 캐릭터 토드 역할 김준수는 수년간 구축해온 캐릭터를 표현하면서도, 과거의 김준수에 비해서 더 깊은 숨소리를 드러내고, 발을 소리내 구르는 등 강렬하고 절도 있는 몸짓을 보여주며 말그대로 '죽음' 그 자체가 됐습니다.
로맨스로 해석되는 장면에서도, 인간이 아닌 만큼 애틋하기만 하지 않고 스산하면서도 강한 분위기를 보여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안정적인 음 처리가 장점인 김준수는 대표곡인 '마지막 춤'을 부를 때 사다리로 빠르게 올라가고 경사진 사다리가 고공으로 올라가는 모든 순간에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완벽한 고음을 보여줘 뮤지컬 팬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엘리자벳을 암살한 아나키스트인 루케니 역할인 이지훈은 고난도의 날카로운 고음을 무난히 소화했고, 트럼펫을 부는 오케스트라 단원과 호흡하며 관객의 박수를 자연스럽게 유도해냈고 익살스러운 대사로 관객의 웃음 역시 이끌어냈습니다.
예법을 강조하는 엄한 대공비 소피 역할 주아는 원래 자신의 목소리인 듯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어머니의 목소리를 내고 점차 구부정해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등 극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출연자들은 결혼 장면 등에서 앙상블까지 모두 완벽함에 가까운 아름다운 합창을 보여줬으며, 주요 배우들의 듀엣과 삼중창 때는 서로 다른 가사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 '소리의 합'이 잘 맞아, 연습량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늠케 했습니다.
다만, 루케니 역 이지훈이 대표곡 중 하나인 노래 '밀크'를 부르거나 기념품을 들고 노래를 두 차례를 부르는 순간은 합창 소리나 관객의 박수 소리에 묻혀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음소거에 가깝게 음량 조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JTBC '팬텀싱어3'를 통해 그룹 레떼아모르로 활동한 성악가 길병민은 뮤지컬 데뷔 무대에서 표정 연기를 통해 무력한 황제인 요제프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했으며, '엘리자벳'이라는 단어를 원어 발음에 맞게 끝발음까지 약하게라도 처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은 특히 1막의 마지막 곡 '나는 나만의 것'을 변용한 곡에서 애절한 요제프의 구애곡을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구현해내며 성악과 뮤지컬의 절묘한 합을 찾아냈습니다.
이번 뮤지컬 공연에서 제외하고 논하면 섭섭할 정도로 역할이 컸던 배우는 어린 루돌프 역을 맡은 김유안이었습니다.
김유안은 꾸밈 없이 곧으면서도 정직하고 맑은 음성으로,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황태자를 연기해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김유안은 올해 한국동요음악콩쿨 2학년부 금상을 탔으며, 지난해 제30회 성정음악콩쿨 성악부문 초등 1-2학년부 금상을 탄 인재입니다.
기념비적인 이번 시즌에서는 엘리자벳 역에 옥주현·이지혜, 토드 역 신성록·김준수·노민우·이해준, 루케니 역 이지훈·강태을·박은태, 요제프 역 민영기·길병민 등이 출연 중입니다.
다른 캐스팅도 오리지널 창작진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이지혜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뽐내는 신성록, 뮤지컬 데뷔작이지만 만능 엔터테이너인 노민우, 앙상블 배우에서 주연으로 무대를 빛내는 이해준, 그리고 능수능란한 말재주의 강태을과 뮤지컬 팬들이라면 그 누구도 이름을 모를 수가 없는 박은태와 민영기 등이 무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0년 노하우를 결집한 현 프로덕션의 '엘리자벳'을 보는 건 이번 공연이 마지막으로, 뮤지컬 '엘리자벳'은 향후 무대세트와 연출, 안무, 의상, 조명 등에 있어 새 단장을 거쳐 관객들 앞에 다시 설 예정입니다.
[ 김문영 기자 moonyoung.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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