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파월이 꺼내든 '속도조절론'…韓 금리 운명은 안갯속으로
"단기 자금시장 불안에 11월 25bp 인상 가능성 여전히 남아 있어"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40년 만에 맞은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서서히 커지는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긴축 속도 조절을 시사한 이후, 우리나라 외환·채권·주식시장이 혼조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발(發) 통화긴축에 더해 얼마 전에는 '레고랜드 사태'마저 터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금융시장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시장 발작에 경계감을 유지하고 있다. 기준금리 전망 역시 안갯속에 휩싸이긴 마찬가지다. 환율을 잡으려 금리를 올리면 그만큼 경기가 위축되고, 가만두자니 환율이 오르는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일(현지시간) 미 연준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6·7·9월에 이어 11월 회의에서도 기준금리 75bp(1bp=0.01%포인트(p)) 인상을 단행, 연 3.75~4.00%로 높였다. 이는 예상에 부합한 결정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잠시 안도했던 시장은 뒤이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월 의장이 입을 열자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속도를 늦추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 회의 또는 그다음 회의가 될 수 있다"면서도 "연준이 적절한 금리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제법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금리인상 속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최종 인상 수치는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연준이 속도를 조절할지언정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겠다는 강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신호로 해석됐다. 시티는 "파월 의장이 과소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 불능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과대 긴축을 선호한다고 명확히 밝히며 매파적 신호를 전달했다"며 "12월 50bp, 2월 50bp, 3월 25bp, 5월 25bp 인상으로 최종금리가 5.25~5.5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의 최종금리 수준에 대한 시장 전망은 곧바로 상향 조정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현행 3.75~4.00%의 미국 기준금리가 내년 3월부터는 5.00~5.25%로 오른 뒤 같은 해 9월까지 이 수준에서 유지될 확률이 가장 높게 반영돼 있다. 내년 3월 기준 5.00~5.25%로 오를 확률도 하루 전에는 40.2%였으나 연준 발표 직후 45.8%로 5.6%포인트(p)나 뛰었다.
미국 증시는 다우가 1.55%, S&P500은 2.50%, 나스닥은 3.36% 각각 급락 마감했다. 전 세계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유로·엔 등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의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DXY 지수는 전일 종가에 비해 0.59% 올랐다.
'파월 쇼크'의 한파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우리나라에도 몰아닥쳤다. 이날 국내 외환·채권·주식시장은 '트리플 약세'로 장을 시작했다.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7.9원 오른 1425.3원에 출발한 뒤 1428.3원까지 상승했으며,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은 전일 종가 대비 각각 1.27%, 1.25% 뛰었다. 코스피도 전장 대비 1.69% 하락한 2297.45에 출발했으나 점차 낙폭을 줄여가며 0.33% 하락한 선에서 마감했다.
이와 관련해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물가안정에 대한 미 연준의 강력한 의지가 재확인된 만큼 향후 통화정책 긴축 지속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금융‧외환시장에서도 미 연준의 금리인상, 주요국 환율의 움직임,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11월 '빅스텝'(기준금리 50bp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달러·원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금통위가 빅스텝으로 대응할 필요성도 이전보다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종전의 2.50%에서 3.00%로 50bp 올린 지난달 12일 회의에서도 금통위의 최대 주안점은 '환율'이었다. 금통위는 지난달 회의 직후 공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 상승으로 인해 물가의 추가 상승압력과 외환부문의 리스크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정책대응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초(超)저금리를 토대로 크게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 문제는 물론 강원도발(發) 자금시장 경색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만큼 금통위가 또다시 50bp를 인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시각도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금통위의 11월 50bp 인상이 선택지 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만 지금도 단기 자금시장의 불안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25bp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며 "불안한 단기 채권시장과 수출 실적 악화, 국내 주식시장으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한은의 11월 25bp 인상을 뒷받침하는 요건"이라고 분석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도 만만찮다.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꼽히는 주상영·신성환 위원이 25bp 인상 소수의견을 내놓으며 50bp 인상에 맞섰다.
물론 다수결에 의해 결국 기준금리 50bp 인상이 결정되긴 했지만, 금통위원 7명 가운데 2명이 이를 반대할 정도로 기준금리 인상을 둘러싼 시각차가 수면 위로 부상한 셈이다.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당시 두 위원은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그 정도는 과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 "경기와 고용을 과도하게 수축시키지 않으면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기준금리의 상단은 3%대 초반 정도" 등 과도한 금리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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