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에게 유린당하는 소녀, 죽고 있는 내 친구를 도와 주세요”

김선영 기자 2022. 11. 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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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여성 외교단 3명은 기자에게 '매일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삶' 속에서 사는 기분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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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만 8개월을 넘긴 가운데 우크라이나 외교단 3인이 2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에서 한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나 호프코 전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 다리아 칼레니우크 우크라이나 반부패 행동센터 공동 설립자, 올레나 트레구브 NAKO 사무총장. 김동훈 기자
1907년 7월 10일자 네덜란드 신문 헤그쉐 쿠란트에 실린 헤이그 특사 활동 기사 일부. 연합뉴스
헤이그 특사 이준(왼쪽부터), 이상설, 이위종.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탱크 위에 올라가 노는 어린이들. AFP연합뉴스

“‘율리아’라는 내 친구는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그 후로 그 친구가 보디캠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실상을 찍었는데, 아이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어요. 아직 10대에 불과한 소녀들이 러시아군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뒤 살해당하는 걸 볼 수밖에 없는 게 너무 무력합니다”

2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여성 외교단 3명은 기자에게 ‘매일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삶’ 속에서 사는 기분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영국 더블린에서 한국으로 막 넘어왔다는 이들의 표정 속에는 ‘담담한 고통’이 서려 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안보 분야 부패방지에 힘쓰는 비정부기구 ‘NAKO’의 올레나 트레구브 사무총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와 함께 자리한 한나 호프코 전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은 “틱톡·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활동하던 어린 소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며 “가끔 이들을 강간·유린하는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기자들이 직접 와서 이런 현장을 담아가서 한국어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다리아 칼레니우크 우크라이나 반부패 행동센터 공동 설립자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기자들이 위험 속에서도 우크라에 들어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의 현실을 담아가고 있다”며 “한국 기자들이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서 도움을 호소하러 온 이들 외교사절단의 행보는 100여 전인 1907년 한국 특사 3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규탄하고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갔던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헤이그에 도착하고도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외에서 ‘망국의 한’을 토로해야 했다. 100여 년 전 힘이 없어 침략당한 슬픔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내야 했던 ‘헤이그 특사’들과 한국을 찾은 우크라이나 외교 사절단 3인방 마음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헤이그 특사’들은 결국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에 들어가는 데에 실패했지만 이들은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고 ‘망국의 한’을 토로하는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내놨다. 100년 전 한국의 아픔은 이 같은 형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날 인터뷰가 시작할 때 들어온 이들의 손에는 한국의 가을을 곱게 담은 ‘낙엽’들이 들려있었다. 오는 길에 땅에 떨어진 이파리들을 주어온 듯했다. 낙엽을 든 우크라이나 외교 사절단 3인방의 손이 아름다워 몇 번을 바라봤다. 나라를 잃고 죽음이 닥치는 감당 못 할 슬픔 속에도 ‘순간의 아름다움’은 남아있다는 것. 그것이 지독한 서러움 속에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될 터이다. 부디, 이들이 내년 가을에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로운 낙엽들을 손에 쥐고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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