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착취에 반감 커져… 음식 넘어 패션·자동차까지 ‘비건 경제’ 급성장
프랑스 명품 회사 에르메스는 지난해 동물 가죽 대신 버섯 뿌리의 균사체를 활용한 ‘비건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출시했다. 구찌·생로랑·발렌시아가 등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 케링은 올해 가을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동물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산업에 반감을 드러내는 ‘비거니즘(veganism)’ 문화가 음식을 넘어 패션·화장품·자동차 등 산업 전(全)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동물 조직·뼈 등에서 추출한 원료를 식물성으로 대체한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벤츠·BMW·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차량 내부에 비건 가죽을 적용한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비건 가죽·뷰티 시장 규모만 해도 올해 각각 413억달러, 173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커지면서 비거니즘 문화가 이제 ‘비거노믹스(비건+경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비거노믹스의 핵심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15년 36억8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에서 2021년 53억6000만달러(약 7조6000억원)로 5년 사이 50%나 커졌다.
비거니즘은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확산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공장식 동물 사육과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인간의 편의와 욕망을 위해 동물을 도살하는 산업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것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도 사람들을 비거니즘으로 이끌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약 71억 tCO₂(이산화탄소톤)으로, 이는 지구 전체에서 한 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달한다. 대부분 소, 양 등 가축의 트림이나 방귀를 통해 메탄 가스 형태로 대기에 배출된다.
비건의 범위가 엄격한 채식뿐 아니라 어패류(페스코) 또는 가금류(폴로) 섭취 등으로 유연하게 확장된 것도 비건 지향 인구 급증에 기여했다. 매년 1월 한 달간 비건에 도전하는 전 세계적 캠페인 ‘비거뉴어리(veganuary)’에 참여하는 사람은 2015년 1280명에서 지난해 51만3663명으로 6년 사이 400배 증가했다. 이렇게 늘어난 비건 지향 소비자들이 고기는 물론 동물 가죽·털을 이용한 의류, 동물성 재료나 동물 실험을 통해 생산된 화장품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기업들도 가만히 있기 어려워졌다.
비건 제품이 가격이 비싸 대중화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비거노믹스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될 전망이다. 비거니즘 문화를 주도하는 MZ세대가 유독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MZ세대는 10명 중 6명이 “ESG 우수 기업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비싸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황성영 연구위원은 “깐깐해지는 MZ세대를 포용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ESG 경영 차원에서 비거노믹스에 크게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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